2009년 12월 24일
자학의 時. 고다 요시이에.

사랑받고 싶다, 는 욕구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라는 질문은 확신을 위한 답을 추구하는 질문이라기보다 누구든 사랑받고 싶어한다, 는 명제에 대한 돌아짚는 긍정에 가깝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 역시 그에 고개를 끄덕이리라 생각한다. 사람은 사랑받길 바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특히나 더 사랑받지 못한다. 사랑받은 적이 없기에 자신에겐 사랑받기에 적합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뿌리치기 어려워한다. 그렇기에 자신을 확신하지 못한다. 그 불안이 눈 앞을 지나가는 행복마저 그 인생 바깥으로 밀어낸다.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번연한 고통속에 몸을 던진다. 사랑받고 있다고 착각하기 위해 자신을 찢는다. 평균치의 애정을 축적하고 그에 기반한 행복을 지닌 이들이 보기에는 불가해한 모습이다. 경멸감이 들 정도로 어리석고, 혐오스러울만치 참혹하기도 한. 그런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인생에도 밤의 해원 위에 뜬 달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있다. 그 달을 바라보며 흘리는 눈물로 피어나는 꽃이 있다. 그렇게 행복을 갖는, 인생이 있다.


자학의 시, 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모리타 유키에라는 한 여성과 그녀의 세계의 이야기다. 두 권 도합 600페이지가 넘는 4컷 만화로 그려진.

매부리코. 그래서 어릴 적 별명은 드라큘라였다. 그 콧망울엔 작지 않은 점이 있다. 그녀는 남편이 있다. 하야마 이사오라고 한다. 일을 하지 않는다. 돈을 벌지 않는다. 하는 거라곤 도박, 싸움, 술, 그리고 밥상 뒤집기. 야쿠자와의 눈싸움에서 지는 법이 없고 운이 터지지 않는 빠칭코 기기는 차 부순다. 작은 식당에서 일하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 유키에로부터 용돈을 받거나, 주지않으면 빼앗아 경마장에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키에는 이사오에게 극진하다. 이사오가 자는 동안 그의 손톱을 깎아 소제하고, 길 멀리서 이사오만 보여도 반갑게 달려가 팔짱을 낀다. 매번 밥상이 뒤집혀도 한 마디 불평하지 않고, 주위에 노인이 있어도 전철 안 자기 앉은 자리에 이사오를 앉히지 못해 안달한다. 이사오에게 나가라는 소릴 듣고도 이사오의 끼니를 걱정하여 집 창문 안으로 밥을 사 밀어넣는다. 자신의 헌신에 대한 언젠가의 보답마저 기대하지 않는다. 유키에에게 이사오는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절실한 존재다. 현관에서 술에 곯아떨어진 이사오를 방으로 끌어오지 못하고 그에게 이불을 덮고는 그의 옆으로 기어들어간다. 유키에는 그 이불 안에서 행복의 냄새를 맡는다.

눈을 돌리고 싶은 따위의 이야기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4컷 만화연작엔 '결국 여자의 애정에 감화되어 끝내 온전해지는 나쁜 남자'나 '그에게 착취당하며 고난을 겪지만 한없는 헌신과 사랑으로 종당 행복이란 열매를 맺어내는 여자'같은 신파는 결코 그려져 있지 않다. 유머러스하게, 때로 눈물겹게 묘사된 유키에의 인생과 그녀를 둘러싼 군상들의 이야기 속에서 유키에는 그녀의 고단한 나날을 살아가고, 그 어느 순간에 자신의 인생의 가치를 발견해낸다. 그 가치는 인생에 대한 비굴로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며, 기만적인 인생찬미나 달리 선택할 것 없는 낙관과도 가깝지 않다. 그녀는 사랑받지 못했음에도 환하고 행복한 순간을 맞는다.

권한다.


by laystall | 2009/12/24 04:42 | 02 | 트랙백(1) | 핑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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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세상을 보는 검은 눈,.. at 2009/12/31 19:16

제목 : 「자학의 시」 - 나락으로 떨어져야 작은 빛을 본다
※ 작품의 스포일러가 일부 들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한다. 그 환경이 자신이 원하든 것이든, 원하지 않는 것이든. 환경에 적응한 사람의 행동은 환경이 바뀌고 나서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오랜 검열에 찌든 한국 만화가 자체적인 검열에 시달리는 것이나 (그래서 '19세 미만 구독 불가' 만화가 전혀 19세 이상이 볼 만하지가 않다.) 인권보다 경제가 우선적으로 여겨진 사회에 익숙한 사람이 조금만 인권을 신장시키려는 노력에......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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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크레이지키드 at 2009/12/25 02:13
무지 보고 싶구만요!
Commented by laystall at 2009/12/25 12:23
서점으로 ㄱㄱ 하시라능! (각권 8500원)
Commented at 2009/12/26 21:1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laystall at 2009/12/26 22:04
커어. ㅎ. 그렇군요. 즐독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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