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 26일
유산
    
우는 사람, 꽃을 던진다. 꽃이 던져진다. 시신 위에 떨어진다. 누가 목을 뒤로 홱 꺾고 짐승같은 소릴 낸다. 울부짖는다. 누가 크게 욕설을 토한다. 시뻘건 얼굴로, 까뒤집힌 흰 눈으로. 누가 옆에서 말한다. 나는 너무도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그만 숨어버리고만 싶다, 절망했다, 이곳이 너무나, 싫다. 고개 떨구고 내게 그렇게 말한다. 나는 어떠냐면, 우는 사람과 울부짖는 사람과 내 옆 사람을 싸잡아 뭉쳐 욕설을 토하는 사람에게 집어 던져, 그들이 한 덩어리로 땅에 나뒹굴다 널부러져 경악으로 쳐드는 눈물범벅의 얼굴과 눈 마주치고 싶다. 한 마디도 주지 않고, 그렇게 해주고 싶다.

당신은 이 나라의 아버지를 잃었다 하고, 한없는 절망감에 목이 메인다고 말한다. 여하간 어쨌든 부끄러워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뭐가 부끄러운데. 당신이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대통령을 나라의 아버지라 쉬이 칭해버리는 모자란 지성이고, 이제 어디에 기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흐느끼는 노예근성이다. 슬퍼 견딜 수 없다며 푹 숙인 그 고개고, 이내 절망을 말해버리는 부족한 어휘와 안이한 사고다. 노통은 일생 자신의 의지대로 싸웠고, 벼랑 끝에 몰려 스스로 그 싸움을 마쳤다.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쓰고는, 마지막 담배 한 개피에도 연연하지 않고 떠났다. 나는 그가 가엾지 않다. 그보다 가여운 것은 당신이다. 사고와 판단과 결정을 위임할 이를 고르다 고개 갸웃거리는, 여하간 기대어 커다란 의지가 되어 줄 '아버지'를 바라는, 이제 죽은 이이기에 쉬이 그를 경애하고 기리는, 그를 벼랑 끝으로 몬 부조리에 분노하기보다 절망을 향유하는 당신이다.

나는 당신이 그렇게 슬퍼하는 죽음의 당사자인 그에게, 당신이 무얼 받았는지 묻고 싶다. 2010년의 5월 23일에, 2011년의 5월 23일에, 2012년의 5월 23일에 그것이 여전히 당신 안에 있을지 확신하는지, 묻고 싶다. 당신이 애통해마지않는 노통이 바라고 지키려 했던 것을 위해, 당신이 어떤 삶을 결심했는지 묻고 싶다.

고개 들고, 눈 똑바로 떠라. 그 눈이, 그 변화가, 그 결심이, 그의 유산이다.


by laystall | 2009/05/26 01:38 | 23 | 트랙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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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5/26 15:4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laystall at 2009/05/29 00:41
그러시다니 정말 기쁩니다. 편히 푹 쉬셨길 바래요.
Commented at 2009/05/26 20:3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laystall at 2009/05/29 00:42
네. 김어준씨가 노통에게 보내는 마지막 한 마디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357349.html 처럼, 남은 세상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야죠.
Commented at 2009/05/27 16:2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laystall at 2009/05/29 00:43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다니 기쁘네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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