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31일
은주야, 은주야.

글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어제 본 기사 얘기나 몇 해볼까요.

초, 중학생 진단평가. 일제고사. 31일, 그러니까 오늘 실시되는데 일부 학교에서는 성적 경쟁에 상품권을 걸거나 일제고사 점수를 내신에 반영키로 하는 등 난리랩니다. 학생을 줄 세우니까 자연히 학교도 줄 세워지고, 그니까 쫌만 더 앞에 서려고 질알질알할 밖에요.

충남의 어느 중학교는 학부모 설명회에서 진단평가에서 1~50등을 한 학생에게 상품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전남의 어느 중학교는 진단평가 결과를 내신에 반영하겠다고 합니다. 본래는 참고자료인 진단평가를 내신에 반영해선 안되게 되어있지요. 부산의 어느 중학교는 매주 일제고사 대비용 쪽지시험을 본 뒤 과목당 1점이 떨어질 때마다 1대씩 체벌을 가하겠다고 했다가 학생과 학부모의 반발로 관뒀대네요.

교육당국은 평가를 방해하면 엄중 처벌하겠다고 쌍심지를 켰는데, 전교조와 일부 학부모단체는 ‘일제고사 불복종’을 선언하고 체험학습을 강행할 예정입니다. 전국적으로 1000여명의 학생·학부모가 일제고사를 반대, 체험학습을 신청한 것으로 집계됐다는군요.

교육당국은 체험학습을 떠날 경우 무단결석 처리와 교사 징계를 강행한답니다. 어느 학교에서는 체험학습 가면 바로 무기정학이라고 학생들을 위협하고, 체험학습 가겠다는 학생에게 전학가라고 한다네요. 또 어느 학교에서는 교장이 직접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체험학습을 포기하라 종용하고 있다 합니다. 오늘 일제고사를 안 치는 학생들과 안 치게 허락하는 교사분들이 걱정입니다. 학생을 성추행 한 교사는 몇 개월 후 멀쩡히 교육일선에 복귀하고,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허락한 교사는 파면되는 시국에, 교육당국은 이번에도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교사들로부터 교단을 빼앗을까요.

모든 초,중등 학생을 전국 1등부터 전국 꼴찌까지 줄 세우는 것이 어째서 나쁠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것이 교육의 목적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에서 은주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몸을 던진지 20년이 지났습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뀌었을 시간이고, 그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누구나 알고, 누구나 한 마디씩 해왔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이 문제다. 그럼 당신에게 물어봅니다. 교육의 어디가 문제인가요?

좋은 고등학교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으로 이어지는 컨베이어 벨트. 그 벨트 위에 무난하게 얹혀져 이동되어 종당 1등급 공산품으로 완성되기 위해 선생의 매를 맞고, 별을 보며 깨어나 별을 보며 집에 돌아오고, 그날 주사 받은 무의미한 정보들을 증발시키지 않으려 코피를 쏟습니다. 그렇게 몇은 '좋은 대학'에 가고, 몇은 죽고, 얼마간은 대학이라 이름붙은 취업센터에 가고, 얼마간은 제대로 된 준비 하나 없이 사회에 맞닥뜨려집니다. 20년 전과,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아까 뭘 물었더라요. 그렇죠, 참. 이러한, 우리나라의, 이 교육의 어디가 문제인가요?

막막하고 막연한 질문이지만, 분명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끔한 정장을 입고 큰 건물의 회사에서 책상에 앉아 일하는 직업이라는 빵이 두어 개 골에 매달려 있고, 전국의 아이들이 땅 하는 신호 총소리에 빵을 향해 질주합니다. 뒤떨어지면 수도관을 고치거나 자동차를 손보는 천한 직업을 갖는다고 채찍질 당하고, 앞서 뛰는 아이를 제치지 못하면 패배자요 낙오자가 된다고 부모가 울부짖습니다. 이 미친 레이스가, 몇 십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초중등 일제고사는 이 경주에 아이들을 더 어린 아이일때부터 참가시켜야 한다고 우짖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부모는 아이가 더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더 좋은 운동화를 신기기 위해, 더 좋은 코치를 두기 위해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겠지요. 아니, 아예 허리를 잘라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경남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일제고사 거부는 반교육적인 동시에 극단적인 교육포기 행위이므로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일제고사 시행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업 성취도를 판단할 수 있고, 교사는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학업 성취 수준을 파악해 교육에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학생은 내가 몇 등인지 알 수 있고 학교는 내가 몇 등 학교인지 알 수 있게 되니, 이를 정확한 근거자료로 삼아 더 잘 가르칠 수 있단 소리지요. 이러니 저러니 할 것도 없이,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서열이 공개된다는 것은, 앞에 섰건 뒤에 섰건 죽자고 뛰어야 할 이유가 해일처럼 밀려온다는 것뿐이지요. 이 해일이 학교를, 학생을 을러댑니다. 뒤떨어질래? 낙오할래? 돈 안 벌래? 이 회피불가한 해일의 공포를 줄이거나 잊기 위해선? 아이들의 잠을 더 줄이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더 돈을 들이고, 교사들의 눈이 벌개져야겠죠. 그리고, 더 많은 아이들이 떨어지고 목 매달고 손목을 긋고 약을 먹고, 죽겠지요. 은주는 고3이었습니다. 다음의 은주는 초3일까요.

한 명의 어른된 입장으로, 부끄럽습니다. 기사 몇 개 이야기 할랬는데 한 꼭지만으로 이렇게나 길어졌네요. 참, 씨바스런 나날입니다. 오늘 체험학습을 떠나는 교사분들과 학생들이 좋은 하루를, 그리고 좋은 인생을 이루어가시길, 바랍니다.


by laystall | 2009/03/31 05:21 | 22 | 트랙백(3) | 덧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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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다행이다。 at 2009/03/31 13:28

제목 : 리미야, 아이야
은주야, 은주야.예전 고3 시절을 떠올려봅니다.학교 다니던 그 시절의 제가 알던 것들과 사회에 나와서 배운 것들의 괴리감과좁은 새장 안에서 그 새장에서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 믿었던 어리던 저를 봅니다.세계는 넓은데우리가 살아가며 배우는 세계는오직 학교 회사 학원돈 명예 이기심베품과 나눔을 실천하기도 전에제 밥그릇은 스스로 챙기라는 말부터 들었고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내가 되기 전에누구에게도 기대서는 안 되는 혼자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느끼며......more

Tracked from # 간이역, 꿈꾸는 식물 at 2009/04/03 11:39

제목 : 당신이 교육자라면 꼭 읽어야 할 책 1-'유리알 유희'
유리알 유희 헤르만 헤세 지음, 박환덕 옮김 / 범우사 여기서 교육자라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말을 하는 것이다. 단순히 교사만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부모도 될 수 있고 더 크게는 교육부도 될 수 있으며 그보다 좁게는 교육감까지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교육이라는 것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는 단순히 영재교육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이 ......more

Tracked from 자그니의 시크릿 스크립.. at 2009/05/20 19:19

제목 :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구요.
좋은 고등학교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으로 이어지는 컨베이어 벨트. 그 벨트 위에 무난하게 얹혀져 이동되어 종당 1등급 공산품으로 완성되기 위해 선생의 매를 맞고, 별을 보며 깨어나 별을 보며 집에 돌아오고, 그날 주사 받은 무의미한 정보들을 증발시키지 않으려 코피를 쏟습니다. 그렇게 몇은 좋은 대학에 가고, 몇은 죽고, 얼마간은 대학이라 이름붙은 취업센터에 가고, 얼마간은 제대로 된 준비 하나 없이.....more

Commented by blus at 2009/03/31 05:25
좋은 하루를. 좋은 인생을.
Commented by laystall at 2009/03/31 05:35
아 딸기밭 체험학습 저도 가고 싶타능..
Commented by 로무 at 2009/03/31 11:03
그럴땐 아이가 아프면 됩니다. (얄팍한 지혜)
Commented by laystall at 2009/03/31 19:09
아니 그런 꼼수가..
Commented by 아이 at 2009/03/31 14:20
포스팅 하나 엮구 갑니다 :)
Commented by laystall at 2009/03/31 19:09
예. :)
Commented by ;; at 2009/03/31 19:07
중간에 오타 같습니다..
성적은 행복순이 아니잖아요, 가 아니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가 맞지 않나요?;;
아무튼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Commented by laystall at 2009/03/31 19:09
와갸갸갸 그렇네요. 고맙습니다. :)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3/31 21:30
문제는 그놈의 '성적'에 인생 전체가 좌우된다는 사실이죠. 학교에서만 어떻게 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Commented by laystall at 2009/03/31 21:32
학교에서만 어떻케 하라는 얘기가 아닌데염.
Commented by 소에 at 2009/04/01 00:45
현재 학교에서 실시되는 원래 진단평가는 학력평가와는 성격이 매우 다릅니다. 학생들의 성적을 평가하고 등수를 매기는 것에 초점을 둔 시험이 아니라, 말 그래도 진단을 하는 평가에요. 예를 들어 초등학교 5학년에게는 교육과정상 최소 학력기준을 달성하고 있는지를 측정하기 위해 대충 3~4학년에 배운 내용과 난이도 위주로 시험 문제를 냅니다. 이 시험 결과는 학생들이 학업 부진인지 아닌지 개인차를 알아서 향후 지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시험이지요.

원래 의도는 이렇게 학생에게나 교사에게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가볍게 보는 시험이었고 일제고사와는 달리 부담없이 보는 시험이지만 이런 시험에도 아이들은 부담을 느끼고 힘들어 하곤 하죠. 저 중고등 학교에서 저런 조건을 내걸면서 이미 진단평가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학력 평가 일제고사가 되어 버렸네요ㅠ
Commented by laystall at 2009/04/01 01:30
쓰신 덧글이 [원래는 학력의 진단을 위한 시험인데, 예와 같은 저 중고등학교에서 저런 조건을 거는 통에 학력평가 일제고사가 되어뻐렸다]는 말씀처럼 읽히는데, 그런 말씀은.. 아니시죠?
Commented by 쉬운남자 at 2009/04/01 06:41
경남 남해군이라는 곳에 삽니다. 중3인 동생이 오늘 일제고사를 치르고 왔는데 재미있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경남이 다른 도와 비교하여 일제고사 순위가 제일 떨어진다고 하는데,
경남 중에서 제일 성적이 떨어지는 곳 중에 하나가 바로 여기 남해라고 하네요 ㅋㅋㅋㅋ
사실상 전국 꼴등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하네요 ㅋㅋㅋㅋ
그래서 쪽팔리냐구여?? ㅋㅋ

저도 여기서 중고등학교를 나왔지만, 환경에 비해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변변찮은 학원도 그리 많지 않은 총 인구 2~3만에 한해 고3 학생들 다 합쳐봐야 한 천여명 되려나요.
그 정도 수준에도 매년 서울대 진학자가 3~4명씩 나오고 한 학교에는 다른 지역에서 유학하러 오는 경우도 자주 있다는 거 같아요.
저는 여기가 꼴찌라는 생각은 안합니다. ㅋㅋ


정부가 아무리 정책을 수정하고 보완해도 사교육 열풍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 봅니다.
아무리 완벽한 정책이 실현되더라해도 결국 그 정책 수혜자의 마인드가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을 다시 한번 해보면

체재가 아무리 바뀐다 하더라도 결국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면 변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일제고사를 치른다곤 해도 말입니다. 전국순위가 매겨지고 등급이 정해진다 하더라도
참된교육이 살아있고 모두에게 인간답게 살려하는 의지가 있다면 무슨 악법이 어떻게 행해진다 해도 아무 소용 없을 것이란 겁니다.
신경쓰지 않고 휘말리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남이 무슨 줄을 세우던 말던 엉덩이에 무슨 등급 도장을 찍던지 말던지 상관하지 않으면 거기서 그냥 끝인듯 합니다.
번호 몇번 찍는걸 조금 잘못했다고, 혹은 조금 잘했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가 오르내리지는 않습니다.


대체 어떻게해야 이런 막장테크들을 끊임없이 뽑아낼 수 있는 것인지 정부에 좀 궁금하긴 한데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고 흔들림 없이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고, 그들의 영향과 파급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백날 욕해도 바뀌지 않는 이 나라 정치판. 이제 그만 포기하구요, 체재나 법규의 변동과 같은 외압적인 힘에 의해 허울과 명분만 바로잡는게 아닌, 사고와 가치관을 올바르게 잡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내부로부터의 변화로 갈아엎었으면 합니다.
Commented by laystall at 2009/04/02 06:11
닉을 재미있게 바꾸셨네요, ㅎ. 오랫만에 뵈어 반갑습니다.

쉬운남자님, 사회의 모습을 결정짓는 가장 커다란 줄기는 시스템입니다. 사회는 시스템으로 그 복잡한 흐름이 통제되며, 또한 유지되고 있지요.

물론 사회는 사람에 의해 구성되고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 단어를 바꿔 넣어도 틀린 이야기가 되지는 않지만, 그 사람의 모임, 즉 사회가 지향하는 바가 그 사회 구성원 모두의 행복과 안전이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인정하는 규약이 필요합니다. 법과 같은 것들을 말합니다. 간단히 줄여 말한다면, 시스템/법이 그 사회의 모습을 결정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병역법에 따라 군대를 다녀왔고, 교통법에 따라 횡단보도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리며, 노동법에 따라 최저임금을 보장받지요.

이러한 법규가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거나, 거대한 권력에 의해 법제가 휘둘려지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고통이 큽니다. 얼마 전 미얀마에서는 한 블로거가 군사정부 지도자 탄 슈웨를 묘사한 만화를 인터넷에 올렸다가 징역 20년을 구형받았죠. 이런 미얀마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국민 개개인의 민주의식 신장? 그렇지 않지요. 사회 구성원이 동의하고 납득할 수 있는 올바른 법 체제입니다.

올바른 법 체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의식부터 먼저 정의롭게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니냐. 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의식이 얼마나 어떻게 정의롭게 된다해도 예의 시스템을 수정하고 개선하려 하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으며, 불의한 권력이나 부조리한 시스템도 견제 받거나 제지 되지 못합니다. 제가 쉬운남자님께 말씀 드리고 싶은 부분은 바로 이 점입니다.

쉬운남자님은 시스템이 어떻게 변해도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으며, 사회에 의해 어떤 이름표나 꼬리표, 인식표가 붙어도 내가 그에 상관치 않으려 생각한다면 그것으로 좋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런 불의한 사회에 상관치 않고 개인적인 정의와 도덕을 견지해 나아가 커다란 변화에 이르는 것을 바란다고 하시고요. 분명히 말씀드리면, 그것은 사회의 변화로 이어질 수 없는 관점입니다. 올바른 개인이고자 노력할지언정, 그 노력이 쉬운남자님의 말마따나 '거기서 그냥 끝'나기 때문입니다.

부정한 사회가 내게 어떤 딱지를 붙이건 코웃음 쳐버릴 수 있는 자존감은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사회에 어떤 불의한 권력이 횡포를 부리건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고 흔들림 없이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라는 것은, 무리하고 안이한 바람일뿐입니다. [참교육을 살리고 사람들 모두가 인간답게 살]게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사회 시스템의 끊임없는 수정과 개선, 보완입니다. [어떤 악법도 사람들의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이길 수 없]지만,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사회가 어떻건 상관치 않고 나만 정의롭게 살면 된'다고 생각해선 안됩니다.

욕을 해도 바뀌지 않는 이유는, 욕으로는 시스템이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많은 이들이 흔들림 없이 정의를 실현하고 그들이 사회에 영향을 끼쳐주길 바랍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정의는 대개 서로 부딪히며, 그 충돌과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는 결과가 그 사회의 시스템입니다. 체제나 법규이지요.

허울이나 그저 명분으로 여겨지는 체제나 법규가 있다면, 필요한 것은 그 체제나 법규를 수정하려는 노력입니다. 사람들의 사고와 가치관은 여러 방식을 통해 진보하며, 그 진보가 변화를 가져오지만, 그 변화란 바로 체제나 법규의 변화, 바로 시스템의 변화입니다.

욕해도 바뀌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애당초 욕으로 바뀌는 구조가 아닌 때문입니다. 정치는 시스템을 정립하고 시행하는 과정 전반이며, 이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포기하고 사람들의 인식이 올바르게 바뀌어 '갈아 엎혀지길' 바란다는 것은 어느날 사람들이 모두 정의로운 손들을 서로 맞잡고 neo 대한민국을 새로 세우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쉬운남자님이 어디의 어느 당을 지지하든, 어떤 정책을 지지하든, 사회와 시스템으로부터 눈을 돌리시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더 나은 사회를 바라고 지향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Commented by 쉬운남자 at 2009/04/02 09:18
생각 없이 단 리플인데 기대치보다 많은 피드백을 주셨네요 ㅠㅠ;

먼저 타인의 그 무엇과 상충된다면 그건 이미 정의가 아니라, 단순히 개인이 바라는 이상이자 욕심 그 이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개인의 욕망이 아니라, 사회와 인류 전체를 아우르는, 나아가 자연과 우주에 모두 합리적이고 이로운 것이 곧 정의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법이나 체재보다 앞서는 정의이기에 어긋나고 삐뚤어진 체재를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릇된 시스템에 관심을 끊어버리자는 이야기가 맞습니다. 그러나 그건 사회가 어떻게 삐뚤어지던지 상관말고 나만 잘 살자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그보다 앞서는 정의관념으로 무장하여 그에 합당하는 올바른 법은 분명히 지키고, 그에 맞지 않는 삐뚤어진 법은 과감히 거부하자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개개인이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성인군자가 될 때에 지금 삐뚤어진 시대를 지낼 수 있을 거라 봅니다.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 사람들에게 법 앞에 산재하는 정의를 공부하고 실천하라는 것은 오히려 민폐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냥 바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이고, 단순히 스스로 깨닫고 행해주기를 바랄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것은 매우 힘든일이니까요.

정의는 그 무엇도 해하지 않습니다. 저는 단지 부정 앞에 서있자, 쓰러지지 말자고 이야기 하는 것일 뿐이지 부정과 비리를 쳐부수자, 대항하여 싸우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강건하게 끝까지 서 있자는 겁니다. 해하려는 자가 감동하여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뉘우칠 때까지요. 그런 것이 가능하냐구요? 아마도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굉장히 힘들거나 불가능하겠죠. 제가 무슨 권리가 있어 타인을 그러한 고통의 나락 속에 빠트릴 수 있겠나요. 단지 그러길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제 바램이 이뤄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게 정의니까요.

시스템은 중요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걸 무시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시스템을 바꿀 방법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일찍이 우리는 우리의 의견을 대표할 국회의원을 뽑아 국회로 내보내 우리의 의견을 대표하고 각각의 국회의원들이 의견을 종합하고 상충하여 시스템을 유지, 구성하게끔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직 사회와 인류를 위해 공헌해야할 그들이 개인의 탐욕과 특정 집단의 이득을 위해 타락하고 삐뚤어지면서 그 역할에도 오류가 생기고 있습니다.
위와같이 상식적으로 봐도 성립이 안되는 법규를 또 무슨 사심과 목적으로 내놓는 것인지요. 그래놓고 또 어떤 언어유희로 이를 무마할 것인지요.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막아보고자, 바꿔보고자, 불만을 표출해보고자 내는 소리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가며 법규로써 원천차단시키고 있습니다. 법제를 바꿀 칼을 든 것은 그들이니까요.
나아가 언론을 장악해 눈과 귀를 막는 것은 물론 허구를 기정사실화해 그릇된 사실을 유포하는 것까지 서슴없이 저지를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우리가 시스템을 바꿀 방법이 대체 무엇이 있습니까.

저는 개개인의 변화로부터 붉어지는 사회전체의 변화를 내부로부터의 힘에 의한 변화라 부르고 싶습니다. 비슷한 예로 관습법이란걸 들어보고 싶네요. 개개인의 변화로 인해 자연스러 발생하고 굳어져 마침내 법제화된 관습이나 관례 등은 어느 한 개인이 갈아엎자고 해서 바뀔 수 있는게 아닙니다. 누구 한명이나 어떤 단체, 어떤 '주체' 의한 관습화가 아닙니다. 우리 전체의 변화 말입니다. 모두의 가슴 속에 정의가 살아있고 흔들리지 않을 때에 자연스럽게 모든게 변할 거라 봅니다.

그게 아무 힘없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승리수단이라 봅니다. 사심과 탐욕으로 지배와 피지배를 나누고 피지배를 농락하는 인간의 굴레에서 벗어나 버린 이들의 횡포를 회피하고 올바른 사회정의를 세우고 나아가 타락해버린 그들마저 감화시키는 힘이라고 봅니다.
A로 일어선자 A로 망한다 하였나요. 우리국민 모두가 일으켜 세운 그 사회정의는 우리 국민 모두가 사라질 때에 비로소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제가 할 일은 제가 만나는 사람마다
정의는 □다. 라고 외치는 게 아닌 니가 가진 정의는 무엇이니라고 묻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각자의 가슴속에 정의를 살리는 일입니다.
인간이 살아남고자하는 본능을 가진 유기체라면 마땅히 그런 정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치 못하고 있을뿐입니다. 왜냐하면 절대정의는 인간이 살아남기에 가장 뛰어나고 적합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일깨우고 자리잡게끔 하는 거죠. 그게 전부입니다. 애초에 누가 그 일을 시작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가슴에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만이 사실로 남을 뿐이죠. 그게 정의니까요.




터무니 없고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밤세워 무슨 정신나간 글을 써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정말 싫은 것은 언젠가 정말 이방법 말곤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는 기분입니다.
정의는 무슨 정의인가요. 사람은 적당히 욕심부리고 적당히 타락한채로 살아가는게 자연스럽고 좋습니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성인군자가 되어 아무런 규제나 법 없이도 알아서 잘 굴러가는 사회가 얼핏보면 굉장히 이상적인것 같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그만한 지옥이 없을거라 봅니다.
실제로 제가 해야할 일은 이를 차선책으로 두고 다른 최선책을 찾는 일이겠습니다.
아직은 이나라 기득세력의 탐욕이 그만한 극처방을 써야할 지경까지 오지 않았기를 바라는 수 밖에여.
Commented by laystall at 2009/04/03 06:00
예를 하나 들어보죠. 사회가 하나 있고, 거기서 사는 어떤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은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무책임하며 그릇된 행동이라 주장합니다. 또 다른 사람이 있네요. 이 사람은 자신의 양심 상 군복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지요. 이것이 의견의 상충입니다. 두 사람의 정의가 부딪히고 있는 상황이지요.

저나 쉬운남자님이 이 두 사람 중 누구에게 동의하건, 분명한 것은 이 두 사람 모두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에 입각해서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쉬운남자님은 쉬운남자님이 믿고 생각하는대로, 이 두 사람의 상충에 대해 '내 의견은 이렇다'거나 '이것이 옳다'거나 '이것이 정의다'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두 사람이 가진 그것과 동일한 무게를 가진 쉬운남자님의 정의입니다.

이렇게 각자의 정의가 다르기에 사회에는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시스템은 사람들의 수많은 의견과 주장에 따라, 변화하고 보완되고 수정되지요. 가장 최신으로 갱신된 우리나라의 시스템에 따르면, 두 번째의 사람은-그가 남자라면- 아직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병역법에 의거하여 처벌을 받게 되지요.

만약 쉬운남자님이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자신의 양심에 따라 군 복무를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이 시스템/병역법에 불만을 갖게 되겠지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예시입니다. 병역법이 들어간 자리에 미디어법이 들어가도 좋고, 집시법이 들어가도 상관없어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쉬운남자님이 불만을 느끼는,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스템 앞에서 쉬운남자님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앞서의 예처럼, 사람들은 모두가 각자의 정의, 즉 이것이 옳다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고, 그에 따라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렇기에 사회에서 이 각자의 정의가 충돌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쉬운남자님은 이것을 정의가 아닌 순전한 개인적 이상이나 욕심이라 말하셨지만, 쉬운남자님이 정의라 여기시는 '개인적 욕망을 초월한, 사회와 인류를 아울러 나아가 자연과 우주에 모두 합리적이고 이로운 것' 역시 저러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이상이나 욕심과 전혀 무게가 다르지 않은, 쉬운남자님의 개인적인 정의입니다.

쉬운남자님이 그것을 '이것은 법이나 체제보다 우선한다'고 여기시는 것은 쉬운남자님의 자유이지만, 그것이 시스템과 충돌하거나 위배될 경우엔 쉬운남자님은 시스템에 의해 처벌받거나 제재 당하시겠지요. 다소 불편하게 들리실 예입니다만, 누군가가 '나는 사람을 때려도 된다'고 믿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이지만, 그것이 실행된다면 그는 시스템에 의해 처벌받겠지요.

결국 한 사회에 속한 사회의 구성원은 그 사회의 시스템을 의식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말이 조금 길어졌네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말씀처럼 합당한 법은 지키고 비뚤어진 법은 거부하자고 생각하신다면 그 생각이 불만스러운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개인적인 수양을 통해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선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불가능하며, 쉬운남자님이 스스로 말씀하신대로 건전한 사회도 아닙니다. 인간은 욕구를 지니는 것이 당연하고, 그 각자의 욕구가 때론 충돌하기에 그것을 조율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법/시스템입니다. 시스템의 존재를 무시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지만, 쉬운남자님은 [시스템을 초월하는 불변의 가치를 지닌 정의]가 존재하며, 그것을 만인이 획득하는 것이 부정한 세상을 개선할 유일한 방법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쉬운남자님의 말씀을 재조립한다면, '실현불가능한 방법을 통해서만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갖게 될 것이며, 그렇지만 그것은 지옥같은 사회일 것이다'라는 말씀이 됩니다. :) 그렇지 않지요.

[모두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흔들리지 않는 정의/모두가 성인군자가 되는 것]은 환상이나 이상조차 되지 못합니다. 이것을 사회의 개선을 위해 만인이 획득해야 할 목적으로 삼는다면 사회의 개선은 언제까지고 실현불가능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사회는 느릴지언정 멈추지 않고, 나아져 왔습니다. 나아져 왔다는 것은, 이 사회에 존재하는 시스템이 나아져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지금 사람들보다 특별히 더 악하고 무지했다 말할 수는 없겠지요. 나아져 온 것은 시스템입니다. 시스템의 진보가 곧 문명의 진보입니다. 그렇기에 어딘가에서는 여성도 투표의 권리를 얻게 되었고, 어딘가에선 아동을 보호하는 법이 생겨났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연좌제가 철폐되었지요.

사회구성원 각각의 개인적 도덕률 전반이 신장되어 그 결과로 사회가 나아지길 바라는 것은, 시스템의 개선을 외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입니다. '불가능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변화가 오길 바란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시스템의 개선에 대한 고민과 노력과 행동을 외면하며, '나는 내가 옳다고 여기는 시스템만 존중하겠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시스템을 무시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시스템을 바꿀 방법이 무엇이 있느냐고 물으셨지만, 딱 이것만 하면 바뀐다, 이것만 파면 이뤄진다, 같은 매뉴얼이 어딘가 있으면 저도 무진장 알고 싶네요. ㅎ.

시민으로서 사회와 사회의 시스템을 주시하며, 믿는대로 참여하고, 올바르게 알고 생각하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일개 시민의 행동으로는 충분합니다. 적어도 하늘에서 용가리가 강림하여 청와대를 걷어차거나 어느날 사람들이 머리 뒤로 후광을 빛내길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행동이지요. 이것을 최선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일깨우고 공유하시려는 '절대정의'를 찾으시는 것은 불건전한 일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찾고 전파하며 공유하는 것으로 사회의 변화가 일어나길 바라시는 것은 재고해보시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ㅎ. 블로그를 쓴 이래로, 아마 가장 긴 덧글을 쓰지 않았나 싶네요. 또 새벽이 다 되어버렸네요. 좋은 날 되시길.
Commented by 쉬운남자 at 2009/04/03 21:18
제가 말하는 절대정의도 개인적 정의의 일부라 말씀해주셨는데, 어떤 근거를 두시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애당초 정의라는 이름 자체가 여러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에 따라 스스로가 말하는 정의가 상충하는 것은 각각의 정의가 기반으로 하는 배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위한 정의냐에 따라 그 정의들이 상충하는 것이지요. 개인적 정의는 개인 각자를 위한 정의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개인의 욕망을 초월하겠지만, 개인의 욕망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의 욕망을 무시하는 일이 인류와 사회를 위한 길이 될리 없지 않습니까. 흔히 전체주의 등의 선례를 빗대어 전체를 위하는 길이 개인을 무시하는 일이 됨을 역설하지만 전체를 위한다는 그 주의도 특정 개인을 위해 존재하였고, 결국은 그들이 내세우는 주의는 입에 발린 거짓말이었죠.
그리고 논외인 말이지만, 제도가 아무리 바뀌어도 개개인이 바뀌지 않으면 현실은 그저 같다는 예를 여기서 찾아볼 수도 있겠군요.

시대가 바뀌는 것은 결국 그 구성원 전체가 바뀔 때에야 비로소 바뀌는 것이라고 봅니다.
영웅이랍시고 한명이 툭 튀어나와 이것저것 바꿔놓아보아야, 허레허식과 겉치레만 바뀔 뿐입니다.
관습법의 예를 들었는데,
위와 같은 경우를 본다면 일제고사 당일날 체험학습을 간다거나, 등교 거부를 한다거나 시험 답안에 모두 오답을 쓴다거나 하는 식의 방식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제도화된 법에 의한 방법은 아니지만, 악법을 무효화시킬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것들이 관행이 되어 모든 학생과 선생들이 그와 같은 방법을 쓴다면 더 말할 것도 없겠죠.
그리고 그렇게 법을 무시하고 법 앞의 정의를 위한 행위를 하려면 법 앞에 산재하는 절대 정의를 준수하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그것이 전제가 되지 않는 위법 행위는 단순한 혼란 그 이상이 될 수 없으니까요.

모든 사람이 성인군자가 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 이야기했지만,
상식선의 수준에서 불가능이라 이야기 한 것이고, 실은 저는 약간의 가능성을 실어보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지금은 시대가 비상식적인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지금 같은 시대가 있었던 적은 없습니다.(실은 역사 어느때에나 모든 현재가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이전까지는 어느정도의 패턴을 가지고 반복할 수 있는 수준이었죠)
과거에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혹은 꿈으로만 꾸었던 일을 지금은 일상에서 하니까요. 쉽사리 상식과 과거의 관행에 비추어 현재를 판단하는 것은 오늘 같은 비상식적인 시대에서는 오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대는 정보화 시대이고,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즐깁니다. 오픈된 정보에 한해서는 모든 이들이 제한이 없이 접근이 가능합니다.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많이 벗어납니다. 과거에는 몇몇 지식인들이 시간과 장소를 정하여 일부러 만나 해야했을 이야기들을, 특별한 자격 없는 이들이라 해도 주소만 입력하면 바로바로 피드백을 구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시간적 공간적 제약의 부재가 과거 현인이라는 존재가 오랜시간에 걸쳐 구하고, 대중에게 설파하던 지식과 선관념을 이제는 대중이 곧바로 집약적으로 또 직접적으로 구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역사적 근거를 들 수가 없어 감히 장담할 순 없겠지만, 욕구만 있다면 누구나 성인군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세계에는 모든 인류가 먹고 살고도 남을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욕심과 탐욕은 자원이 부족한 시대를 효과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욕심을 버리고 분배해야할 때가 아닐런지요.
이미 세계에는 모든 인류를 멸망 시키고도 남을 만큼의 폭탄이 생산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탐욕이 앞으로의 인간사회에서의 생존을 위협한다면 퇴화시켜야 할테지요.

마지막 부분에 '시민으로서 사회와 사회의 시스템을 주시하며, 믿는대로 참여하고, 올바르게 알고 생각하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일개 시민의 행동으로는 충분합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그게 시스템과 시대의 변화를 초래하는 과정이나 필요조건등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시간을 뺏게 되는 거 같아서 좀 그렇네요....;;;
모쪼록 많은 피드백에 감사드립니다 ㅠㅠ
Commented by laystall at 2009/04/05 05:03
쉬운남자님께서는 정의가 여럿일 수 없으며, 개인의 이해나 욕구를 초월한 절대적인 정의가 존재한다 여기시지만, 그것을 부르는 이름은 따로이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나는 절대정의의 존재를 믿는다'와 '나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에는 아무 차이가 없지요. 신의 존재를 믿는 이에게는 신의 존재가 정의이겠지만, 익히 아시는 바와 같이 모든 이가 신의 존재를 믿지는 않습니다. 쉬운남자님의 말처럼 개인적 정의들을 상회하는 영역에 고위의 절대적 정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쉬운남자님의 절대 정의의 존재에 대한 신뢰와 믿음 역시 다른이들의 개인적 정의와 같은 무게의, 개인적인 신념과 정의입니다.

저는 쉬운남자님의 절대 정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다소 거칠고 단순한 방식으로 말하자면, '절대정의가 존재하며 사람들이 그것을 희구하는 것이 사회를 변화케 할 것이다'라는 것은 쉬운남자님의 생각일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생각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고요. '쉬운남자님이 말씀하신대로, 사람들이 모두 성인聖人이 되는 결과로 사회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한없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사회의 변화에 일조하고자 한다면, 사회의 개선을 위해 시스템을 주목하고 견제하며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제도가 바뀌어도 개개인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지만, 그것은 미시적인 관점입니다. 제도가 바뀌는 것은 그 사회를 바꾸며, 사회가 바뀌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생활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어느날 제도가 바뀐다고 해서 개인적인 성향이나 세계관이 즉시 일변하진 않지만, 변화한 시스템이 적용된 사회는 천천히, 그리고 분명하게 사람들의 생활과 의식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이것이, 사회의 변화이며, 개선이고, 어느 때에는 퇴행입니다.

일제고사의 예를 들어 말씀하셨네요. 교사분들의 체험학습의 허가나 학생들의 고의 오기 등 일제고사에 대한 거부적인 행동들이 이른바 절대정의의 준수에서 오는 것이라 여기시는 듯하고요. 저 역시 저와 같은 행동을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그리고 저 교사분들과 학생들이 옳은, 정의로운 행동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는 이것이 옳은, 정의라 생각한다'라 생각하고 행동한 결과입니다. 생각의 주체도, 행동의 주체도 온전히 '나'인 것이지요. 어떠한 절대적 정의가 있고, 나는 그것을 준수했으며, 이것을 준수하지 않는 것은 틀린 행동이다 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쉬운남자님이 일제고사를 거부하지 않은 학생들이나 교사분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쉬운남자님의 말대로라면 그들은 '법에 우선하는 절대 정의를 준수하지 않은' 이들이 됩니다. 그렇지 않지요. 그들은 쉬운남자님과 '생각이 다른' 이들입니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죠.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쉬운남자님이 이해하고 계실 수도 있고, 그들이 바라는 것을 쉬운남자님은 바라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가 '그들이 절대정의를 모르거나 따르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여기시는 것은 곤란합니다. 되풀이 이야기했듯, 절대정의의 존재에 대한 확신은 쉬운남자님의 개인적인 신념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인터넷 등을 통한 방대한 정보에의 접근의 방법이 과거에 비해 대단히 폭넓고 깊어진 이유로 사람들의 의식이 진보할 가능성은 한없이 희박합니다. 사람은 욕구에 의해 행동하며, 일반보편적인 경우, 사람은 사고의 진보나 지식의 취득과는 다른 것을 욕망하는 때문입니다. 쉬운남자님이 말하셨듯, '욕구만 있다면 누구나 성인군자가 될 수 있'는 시대라 해도, 보통의 경우 '성인군자가 되고 싶다'거나 굳이 '지금보다 더 나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욕망하지는 않지요. 또한, 접근 가능한 정보가 많아졌다는 것이 '성인군자'에의 루트가 확보되었다고는 볼 수 없지요. ㅎ. 간단히 말하자면, 말씀대로라면 성인군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쉬운남자님께서는 이미 성인군자가 되셨거나, 되어가시는 중이겠지요. 스스로 어떻게 느끼실지는 모르겠지만, 모든이가 그런 욕구를 지닌 것은 아니며, 또한 모든이가 정보를 통해 성인군자가 될 수도 없습니다.

말씀처럼, 세계의 사람들을 모두 먹일 수 있는 식량이 생산되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기근으로 죽어갑니다. 이와 같은 세계의 부조리나 사회를 개선하고자 하신다면, '모든이가 성인군자가 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여기시는 것보다, 부당을 느끼시는 시스템들의 개선에 대한 고민을 하시는 편이 훨씬 구체적인 행동일 것입니다.

그리고, 전 소통을 위해 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쉬운남자님은 특히 그림을 그리시는 분이라, 더 조근하게 이야기를 드리게 되기도 하네요. ㅎ. 부디 제 피드백이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쉬운남자 at 2009/04/05 18:29
얼마전 웹서핑을 하다가 한가지 재밌는 글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오랜시간동안 한반도에서 중앙집권체제를 이루어 오기 위해, 이 나라의 기득권이 저지른 부정이 한가지 있다고 합니다.
오랜세월 지배받아온 피지배자들의 불만을 풀어주기위해 한가지 쾌락을 허락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저지르는 부조리를 눈감아 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지주가 소작농에게 수확량의 20%를 내라고 하면, 소작농은 자기 수확량이 100가마니인걸 80가마니로 속여 20가마니를 내야할 것을 16가마니로 속여 낸다고 합니다. 그런 부조리에서 쾌락을 얻어왔고 오랜기간동안 지속되면서 중독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은 지주가 필요했던 것은 16가마니 였을테고, 소작농이 4가마니를 속여낼 것을 미리 예측하고 20가마니를 부른 것이겠지요.
몰래 저지르는 범죄의 쾌락만큼 헤어나기 힘든 것도 없죠. 더구나 범죄아닌 그 범죄는 피지배층으로서도 떳떳할 수 없게 만들었고, 어떻게 보면 공범으로 만들어 버린 셈이죠. 그렇게 숨통이 트이게 함과 동시에 불만을 말할 수 있는 근원을 원천봉쇄해버리고 오랜 시간동안 체재를 이뤄올 수 있었다 합니다.
바르고 정확한 조세제도가 등장하면 오히려 불만을 품고 그것을 거부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전보다 훨씬 싸고, 오히려 퍼준다고 하더라도요. 얼마를 내든, 혹은 얼마를 돌려받든 상관없이 몰래 저지르는 부조리의 쾌락을 즐기는 게 더 나은 것일까요.

그게 부조리 철폐를 강하게 내세우던 노무현 편을 들어주는이가 아무도 없었던 이유라 하고, 이전 정권이 실패한 이유이고, 전과 14범인 자가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라 합니다.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헌법은 야들야들하고 모호한 점이 많아 악용하려면 악용할 수 있게끔 되어 있는 법이 많은걸로 압니다. 앞선 부조리의 쾌락을 유지해주기 위함이 아닐까요.

이것이 제가 제도 변경에 의한 사회변화 촉구에 신빙성을 두지 않는 이유입니다.
뭐가 어떻게 바뀌든 간에 바꾸는 사람은 얄팍하게 바꿀 것이고 바뀔 사람들은 또 어떻게든 그 얄팍함을 악용할 것입니다.
개개인의 계몽을 통한 사회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이상, 바른 제도 자체가 등장할 수 없고 적법은 오히려 거센 반발과 몰매를 맞고 사라질 것입니다.

개개인의 정의가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겠습니다.
저는 일제고사를 치르는 것이 교육의 위기인줄 알고 그것을 찬성하는 자들은 오직 틀린자들인줄 알았는데, 일제고사를 찬성하는 자들에게도 교육의 생산성을 위한 이유가 있고, 그들만의 살아남는 방법이 따로 있는 줄을 알겠습니다. 가방끈이 좀 짧아 이해하지 못한 말이 있었는데, 사람이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역사가 옳고 그름을 정한다는 말을 여기서 이해해봅니다.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 옳은 선택이었는가를 알게 될듯 합니다.
그리고 틀린 선택을 한 자들은 도태될 것입니다.
그들이 도태될 이유는 자신의 선택이 틀린지 몰랐기 때문일 것이고, 무엇이 틀린지 알고, 뭐가 바른지 안다면 그들 역시 살아남을 것입니다.
모두가 살아남고 싶어하는데, 아니 죽고자 하는 이도 살아 남아야만 하는데, 모른다는 이유로 죽어가는 건 안타깝지 않나요. 모두가 몰랐던 것도 아니고,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것을 이유로 저는 개인과 사회의 계몽을 말합니다만, 그에 대해선 아무래도 어리석고 헛된 일이라는 평가가 많더군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성인군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모두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라는 예측에 근거해 그 단서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제 예측이 맞다는 가정하에 누구라도 하나 제가 가진 단서를 공유하여 살아남기 유리해지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탐욕적으로 될 수 밖에 없었던 인간은,
마찬가지로 살아남기위해서 성인군자가 되어야할 것이라 예측합니다.
극단적인 삶인, '죽지 않기 위해서' '행성을 멸망 시킬 폭탄의 발사버튼을 누르지 않는' 성인군자가 되어야하며,
궁극적인 삶인, '모두가 살기 위해서' '남아도는 자원을 굶주린 자에게 분배하는'성인군자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누군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외치든 말든 상관 없이 필연적으로요.
자연히 그것에 위배되는 사람은 도태하거나, 도태되겠지요.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제가 가진 지식의 역량에 의한 예측이며, 예로드신 '다른 생각'과 같은 맥락을 띄고 있기에 시간이 옳고 그름을 판단해줄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Commented by laystall at 2009/04/06 00:13
먼저, 현재의 우리나라의 헌법은 대외적으로도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음을 먼저 짚어두고 싶네요. 1948년에 제정된 우리나라 헌법은 지금까지 9차례의 개정이 있었고, 그 개정의 반 이상은 대통령의 독재와 민주탄압을 위해 시행되었습니다만, 그 우수성은 폭넓게 공인받고 있습니다. 예전에 이 포스트로 썼던 적이 있는데, 함 봐두셔도 안 나쁘실 듯 싶습니다.
http://laystall.egloos.com/3180756

쉬운남자님의 주장을 다소 무작하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법이나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악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선해지는 것으로 사회가 변혁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비유를 들자면 이런 것이지요. '청소당번제를 교묘히 피해가거나 악용하는 애가 있으니, 청소당번제를 개선하고 수정하는 건 소용이 없다. 당번제를 어떻게 바꾸어도 그런 애들은 그럴 거다. 방법은 이거 하나다. 모두 착한 아이가 돼서 청소를 잘하자.'

..안되겠죠? ㅎ.

아이들이 모두 착해지는 것이 불가능하듯, 사람들이 모두 성인이 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다시 말하면, 개개인의 계몽과 각성이 사회 변혁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것 역시 무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스스로 성인이 되고자 욕망하지 않고, 되려고 한다해도 정보의 접근성이 높아진 정도로는 무리죠. ㅎ. 만일 그게 된다면 버얼써 뒤통수에 후광 띄우기에 성공하거나 인천 앞바다 수면 위 보행 성공한 사람 여럿 나왔을 겁니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나누며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청소당번을 빼먹는 애들이 있다고 청소를 안 할 수는 없으며, 당번제를 개선하고 수정하는 것이 교실의 평화를 도모하기 위한 가장 분명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당번제가 '공부 못하는 애들만 청소해라'같은 부조리한 것이라면, 이것을 거부하는 것을 '시민불복종'이라 합니다. 하지만 시민불복종의 궁극적인 목적은 부조리한 당번제를 개선하고 수정하는 것이지, 단지 부조리한 당번제를 안 지키겠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당번제를 어떻게 바꿔도 악용하는 애들이 있다면, 그러한 폐해를 줄일 수 있도록 당번제를 정교하게 개선해나가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이지요. 당번제를 부정하고 당번제 없이도 다들 착해져서 알아서 청소를 잘하자, 라는 것은 되풀이 이야기 했듯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핵발사 버튼을 안 누르거나 식량과 자원을 분배하는 것은 반드시 성인군자가 되지 않아도 순전한 이익추구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 일이지요. ㅎ. 모두가 핵으로 사라진 곳에서 혼자 살아남거나 많은 이가 굶주리고 있는 사회보다는, 핵으로 피폭 당하지 않은 곳에서 많은 이가 그럭저럭은 먹고 사는 사회가 핵버튼 작동의 결정자나 식량의 독점자에게도 살기 좋은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악인 혹은 성인군자로 양분되진 않지요. 대단한 악의를 지니거나 광인이 아닌 이상, 성인이 아니라도 자신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 위해 핵버튼을 누르지 않거나 식량을 분배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자연스럽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악인이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핵버튼을 안 누르거나 식량을 분배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최저한의 이익도모를 위한 행동을 성인군자가 될 수 밖에 없는 필연으로 해석하시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일제고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틀렸다'고 여기시는 것은 쉬운남자님의 자유입니다. 부연하자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후의 역사가 '그때 일제고사 찬성하는 사람들이 그런 뻘짓을 했었심ㅋㅋ'하리라고 생각하고요. ㅎ. 다만 여기서 제가 드리는 말씀은, 그렇게 각자 다른 정의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정의를 관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자 생각하는 정의가 다르기에 내 정의가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모르겠고, 그것은 이후의 역사가 판단할 일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른 종류의 안이함입니다.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지시고, 또한 그것을 수정하고 보완하시는 것을 망설이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Commented by 쉬운남자 at 2009/04/09 12:18
제가 너무 민감한건지도 모르겠군요.

인간성 오염이 환경오염보다 더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생각했고
그에 앞장서는 피폐화된 교육은 핵폭탄의 발사보다 더한 결과를 부를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필요악의 수준으로 취급하기에는 너무 해악이 큰 것이라
혼자서 생각한 모양입니다.

앞으로도 혼자만의 생각이길 바랍니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인간이
선해지지 않으면 죽어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필사적으로 성인군자가 되리라(되려 노력하리라) 생각해요. ㅋㅋ
모쪼록 성심성의껏 매번 답변해주신거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ㅠㅠ 많이 배워가게 되네요.
Commented by laystall at 2009/04/09 13:56
그리 말씀해주시니 기쁘네요. 저도 이야기를 나누며 스스로 이것저것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포스팅이 성실한 블로그는 아니지만 종종 놀러오셔요. :)
Commented by nippang at 2009/04/01 21:27
내년에는 나도 학부형. ㅠ.ㅠ 덜덜...
Commented by laystall at 2009/04/02 06:12
나는 지가 가고 싶다고 주장하지 않는 이상 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진 않을 거라능.
Commented by nippang at 2009/04/02 16:12
의무교육기간에 학교에 보내지않으면, 부모가 백만원이하의 벌금을 낸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Commented by laystall at 2009/04/03 06:00
히요씨가 말해줘서 알고 있타능. 까짓거 내고 말거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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