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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6월 05일
집에 돌아와 방문을 엽니다. 고작 일주일 조금 넘는 동안에 놀라울만치 자라있는 까미가 발치로 후다닥 달려옵니다. 올라갈 적보다 훨씬 든 것이 많아지고 무거워진 가방을 내려놓고 방과 집을 청소합니다. 돌아왔습니다. 컴퓨터를 켜고 자리에 앉으니 그간 살펴보지 못했던 수많은 이야기와 말들이 가득합니다. 평소에도 매일 체크하기 버거울 지경이었던 rss는 펼쳐볼 엄두도 나지 않고, 링크된 블로그들과 이글루스를 둘러보는 것만도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촛불시위에 대해서도 참 많은 말들이 쏟아져나왔다는 것을 한 눈에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처음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지난 28일부터 다시 부산에 내려온 오늘까지, 제가 겪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기억과 메모에 의지해 타자치려 합니다. 그건 어느 다른 블로거분의 술회나 기억과는 다를 수도 있을 테고, 어쩌면 평소 제가 신뢰하고 지지해마지않던 어느 블로거분의 의견과 궤를 달리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만 제가 보고 겪은 것을 여기 옮기는 것이 그때 거기 있었던 한 사람의 이야기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창 밖에 사나운 바람이 붑니다. 까미는 제 무릎 위에서 자고 있습니다. 5월 28일 수요일 - 14:00에 부산역에서 ktx를 타고 서울로 출발. 창측 좌석. 과연 빠르.. 빠른가? 16:50 도착예정. 차내에선 히요에게 빌렸던 '폭력과 상스러움/진중권'을 읽었습니다. 나중에 시위현장에서 진중권 교수님을 만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죠. 서울역에 도착해 행인에게 청계광장의 방향을 물어 걸어서 청계광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청계광장에 도착한 것은 17:30분 경이었습니다. - 우연히 강기갑 의원님을 만나 악수. 행사장 전체를 둘러보고 싶어 사람들의 가장자리를 따라 이동하던 중 하얀 한복을 차려 입은 강기갑 의원님과 마주쳤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악수를 했어요. - "택시기사다, 여러분은 인터넷으로 불매운동 등을 하면 된다. 길이 막혀 생계가 어렵다." 어느 택시기사. 말이나 끝까지 하게 해주지. 도착한 청계광장에는 이미 수백명 정도의 사람들이 연단을 중심으로 모여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자유발언을 들으며 조중동 불매 서명을 하고 2000원 짜리 미국 쇠고기 협상 반대 티셔츠를 한 장 샀어요. 그후 들었던 자신을 택시기사라 밝히신 어느 분의 자유발언이 저러했습니다. 저분의 논리와 그 근거가 어떻건 그것은 그것대로 소시민의 현실이 반영되어 있는 한 가지의 바램과 현실에 대한 감상이었을 텐데, 저분의 자유연설은 마이크가 꺼져 발언이 몰수 되는 것으로 끝나버렸습니다. 욕설도 거친말도 없는 그저 호소였던 발언 하나가 그렇게 차단되는 것을 보고 얼마쯤의 회의를 느꼈습니다. - 경찰청 인권위원 아저씨 나와 연설. 도로교통법과 야간시위를 빌미로 체포되는 현실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 일갈. 정확한 직책은 기억나지 않지만 경찰청에서 인권관련 일을 하시는 분이 나와 지금의 시위의 정당성과 경찰의 대응을 비난했습니다. 어조가 차분하고 논리가 명징하여 기억에 남았습니다. - 숙명대 피아노과 학생. 울음. 처음엔 온건하게 시작한 발언이 나중엔 울음 섞인 노래로 이어졌습니다. 그분의 마음이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단지 지금의 쇠고기 협상 상황만이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일이라는 듯한 격렬한 감정의 폭발에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 '쥐약' 팔이 할아버지. 정말로 쥐약을 파는 건지, 큰 짐들을 들고 쥐약- 쥐약-을 외치며 연단 옆을 지나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 동아일보의 불은 내내 꺼진 채. 어스름이 내리고 이내 어두워져도 청계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동아일보 사옥의 간판은 내내 꺼진 상태였습니다. 시위대의 항의에 불을 꺼뜨린 후 당분간 켜지 않을 방침인 듯 했습니다. - 향숙후배와 만나 식사. 식사후 다시 시위장. 평소 청계천에서 캐리커처를 그리는 일을 하는 향숙후배와 만나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향숙후배는 이글루스에서 동네노는누나라는 아이디로 블로깅을 하고 있고, 매주 장애인들의 초상과 캐리커처를 그리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식사 후 맥주캔을 나눠 들고 청계광장에 앉아 이 시위와 지금의 상황에 대해, 그녀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녀는 그 일을 하며 참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힘든 생활을 하는 사람, 부자인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매일같이 많은 사람을 직접 대하는 그녀의 일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우리는 크로키북에 서로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 "그 다른 사람이 나야, 엄마." 어느 아가씨. 향숙후배와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어느 아가씨가 우리 근처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듣기로 아마 그녀의 어머님과 통화를 하는 듯했습니다. "엄만 자꾸 그렇게만 말하지 말구-" "아니 지금 그게 아니라니깐" 이어지던 그녀의 말에서 저 한 마디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아마도 그녀의 모친은 그렇게 말했겠지요. "그런 건 다른 사람이 하는 거니까-" 그 밤의 행사는 10시 즈음 마무리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기로 연행자는 없었지만 그날 가두행진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향숙후배를 보내고, 뿔뿔히 흩어지는 사람들에 섞여 친구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친구는 여전히 되게 어질러놓고 지저분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첫 날이 끝났습니다. 5월 29일 목요일 - 시청광장에서의 집회. 대단히 많은 인파. 저녁 무렵 시청광장으로 갔습니다. 얼핏 봐도 상당한 인파가 모여있었습니다. - 광화문→종각→세종삼거리에 이르는 행군. 두 시간 정도.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은 가두시위에 나섰습니다. 두 시간 정도 촛불을 들고 함께 걸었습니다. 여러 구호가 외쳐졌는데, 따라 외칠만한 구호도 있었고 제겐 그렇지 않은 구호도 있었습니다. 구호를 외치는 것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소리치는 것이 일상인 직업을 꽤 오래 했고, 스스로 그다지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여기고 있었는데도, 그리고 구호의 정당성을 믿음에도 그랬습니다. 주위엔 저보다 힘차게, 그리고 지치지도 않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고시철회 협상무효. 우리들이 민주주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는 노래가 이어졌습니다. 구호를 외치는 것을 주춤하는 것은 잠깐이었습니다. 소리를 내지르며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이지 기가 질리도록 사람이 많았습니다. 넓고 길게 주욱 뻗은 길에서, 거리를 조망할 수 있는 높은 곳에 올라가 행렬의 앞을 쳐다보고, 뒤를 쳐다보았습니다.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 세종삼거리에서 선두가 전경차량에 막혀 정지. 행렬의 선두가 전경차량의 도로봉쇄에 의해 정지했습니다. - 선두의 확성방송이 가능한 차량를 위시한 집단과 시민들과의 마찰. 선두에서 확성방송으로 구호와 노래 등을 선도하던 차량을 중심으로 한 어딘지 모를 단체의 사람들이 멈춰진 시위행렬의 사람들에게 '모두 앉자'거나 '따라해주세요'라며 시위대에게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에 여러 시민들이 반발했습니다. "우리는 네들한테 관리받으려 나온 것이 아니다"라 외치던 사람도 있었고, "일전 종각 상황과 똑같다. 여기 있다가 전경차량이 뒤를 막으면 끝장이다"라 말하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여하튼 방송차량을 지닌 단체에 항의를 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은 '그 방송 좀 꺼라'였습니다. 마이크를 사이에 둔 격한 드잡이질도 있었습니다. 그걸 뜯어말리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된 후에 비로소 행렬의 뒷쪽이 궁금해져 그리 걸었습니다. 걸으며 깨달은 것이지만, 방송차 한 두 대로 어떻게 될 인파가 아니었습니다. 방송차의 방송이 닿지도 못할 곳과, 그곳을 넘어서 한참을 계속 걷도록 아직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관리 받으려 나온 것이 아니다"라는 누군가의 외침이 귀에 쟁쟁했습니다. 여기저기 구호도 제각각, 앉은 사람들과 선 사람들, 부분적으로 대오를 짠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 이리가는 사람들과 저리 가는 사람들. 그때 실감했습니다. 지휘부도 대책부도 없다. 구심점도 없다. 그러나 그것이 부정적으로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저마다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나왔고, 그래서 서로 초면인 사람들끼리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광경이, 보기 좋았습니다. - 약 30분 간 정체하다 다시 시위대 이동 시작. 시위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움직임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며 저는 지금 보고 있는 시위가 어떻게 끝날지 짐작하려 애써봤지만, 짐작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이 시위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지휘도 통제도 없는 이 수많은 사람들이, 무엇에 의해 움직이게 되고 아침이 밝아올 때 어디에 있게 될까. Ηellă님을 만났을 때 두 개째의 양초가 손 위에서 모두 닳아 없어지고 있었습니다. - 국립민속박물관 앞에서 다시 행진 정지. 분산형 조직의 약점. 국립민속박물관 앞에서 행렬이 멈췄습니다. 여전히 참으로 많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그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저만치 앞에서 격한 언성과 웅성거림이 있어 가보았더니 싸움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미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싸움의 중심에 있던 어느 남자가 외쳤습니다. "자본주의 사회 아니냐.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도 먹고 살아야지 않느냐." 그는 운수계통의 일을 하는 사람 같았습니다. 행렬은 다시 움직여 다시 세종삼거리 즈음으로 돌아와 그 이상의 진입을 막고 있는 전경차량들 앞에서 멈췄습니다. - 전경차량 사이로 보이는 틈으로 전경들과 대치하고 있던 아가씨. 24시가 가까워 와 많은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귀가하고 있었습니다. 전철역 출구 근처에서 어느 아가씨가 촛불을 들고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치밀하게 붙여 놓은 전경차량의 사이로, 촛불을 든 채 앉아 그 너머로 엿보이는 전경들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귀가하는 사람들이 그녀를 발견하고, 그녀가 넘겨다보는 것을 바라보고, 이내 그 자리를 떠나는 중에도 그녀는 시선 한 번 돌리지 않고 그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이채로워 잠시 바라보다, 말을 붙여보았습니다. 갓 대학생이 되었을 법해 보이던 그녀는 "저 혼자 촛불시위 하는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제 물음에 대답하려 잠시 저를 보려 고개를 돌렸을 때 보았던 그녀의 눈도, 입가도, 표정도, 그녀가 말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떠올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 쓰레기 주움. 시위대는 세종삼거리-맞는지 원-에 멈춰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로 위에 앉아 자유발언을 하거나, 서로 말을 나누거나,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하고 있었습니다. 귀가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직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잠시 앉아 있자니 정장 차림의 초로의 아저씨가 혼자 쓰레기를 줍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이쿠, 하는 마음에 일어나 그를 도와 주변의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의 쓰레기를 대강 모두 주운 후 그 아저씨께서 주운 쓰레기까지 넘겨받아 가까운 편의점으로 가 거기서 비치한 대형 쓰레기봉투에 버렸습니다. 편의점을 나오니 거리에 널린 쓰레기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시 편의점에 들어가 큰 비닐봉투 몇 장을 사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쓰레기를 주워나가며 '아직 우리 국민의식이 이 정도다-'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주워가는 동안 몇 명의 사람들이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어떤분은 한참이나 같이 쓰레기를 주워 봉투 안에 넣어주시기도 하고, 쓰레기들에 다가가면 그 주위 사람들이 아까의 저같이 어이쿠, 하며 근처의 쓰레기들을 주워 주었습니다. 대부분이 담배 꽁초였습니다. 주워도 주워도 끝이 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침까지 내가 다 줍나 쓰레기가 남나 어디 보자- 하고 생각했지만 아득하긴 했습니다. 그때 누가 제게 뭔가를 내밀었습니다. 목장갑이었습니다. 그 사람도 제가 산 것과 똑같은 비닐봉투를 몇 갠가 들고, 제게 내민 목장갑의 한 쪽을 끼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도 하려고요."라고 말하고 저편으로 가버렸습니다. 허리를 펴고 그가 준 목장갑을 오른손에 끼면서, 아까까지 느꼈던 묵직한 아득함이 훨씬 가벼워져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 옆의 여자를 만류하는 남자. 세 개째의 봉투를 다 채울 즈음 우두두두하고 워커들이 땅을 차는 소리가 들려 허리를 펴자 상황이 일변해 있었습니다. 시위대는 전경들에 의해 몇 조각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세종로 도로 위에 앉아 전경과 밀착대치하고 있는 선두 수십명의 사람들과,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뒤로 모여 여러 구호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쓰레기 봉투를 처리하고 선두와 함께 앉아 스크럼을 짰습니다. 전경을 지휘하는 어느 아저씨가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밝히며 시위대에 해산하기를 권유했습니다. 사람들은 '전경부터 물러나라'라 외쳤습니다. 전경대가 후방 5m 정도 물러섰습니다. 사람들은 전경대가 완전히 철수하라 요구했습니다. 원칙이나 명분이 시위대에 있다해도 기실 무리한 요구입니다. 실랑이가 오가는 가운데 검거경고가 계속되고, 제 옆에 앉은 여성과 일행인 듯한 남성이 제 옆 여성을 끊임없이 설득하려 합니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그만 빠져나가자', '정말 왜 이래'.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교섭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자 '검거해라'는 말을 남기고 지휘자가 빠져나갑니다. 전경들이 시위대를 둘러싸 우리 등 뒤에 늘어섭니다. 미련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이들이 원칙적으로나마 온전히 불법적인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아닌,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들과 함께 앉아 '평화시위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칩니다. - 시위대와 밀고 당기다 전경차량 철수. 누군가가 '검거될 땐 무력저항 말고 자진연행하도록 하자'라 말합니다. 제 얼굴 앞에 선 전경에게 말을 붙여 봅니다. 당연한 것처럼 대답은 없었지만, 그 얼굴이 앳되어 보여 딱합니다. 그때 지휘자 아저씨가 다시 나타나 시위대에게 해산하라 말합니다. 사람들은 '전경대부터 먼저 해산하라'고, '앞에 길 막은 차부터 치우라고 몇 번이나 말했느냐'고 분통을 터뜨립니다. 그러자 지휘자 아저씨, 후련하다는 듯 말합니다. '일어나서 한 번 봐라. 앞에 차들 다 뺐다.' 놀라 일어나 저 앞을 바라본 사람들 모두가 환호합니다. 앉아 있을 땐 전경들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도로를 막고 있던 전경차량들이 정말로 모두 길을 틔우고 빠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축하고 박수칩니다. 사람들이 일어나 흩어집니다. 저도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누군가가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분이죠?"하고 말을 걸길래 봤더니 인터넷 뉴스 '바이러스'에서 나온 리포터였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보니 여기에도 사람들이 일어나고 난 자리가 쓰레기 투성이입니다. 그걸 줍고 나니 벌써 전경들이 주욱 깔린 인도와 도로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쓰레기를 들고 전경들 사이를 지나 인도로 올라갑니다. 나중 들은 것이지만 노회찬 의원님이 거기 나와 강력히 항의하여 연행자들이 풀려났다고 합니다. - 진중권 교수님 조우. '폭력과 상스러움'에 사인 받음. 몹시 세수를 하고 싶었습니다. 얼굴도 팔도 몸도 땀과 먼지에 절어 있었습니다. 세수할 곳을 찾아 터벅터벅 인도 위를 걸어가자니, 바로 몇 미터 앞에 진중권 교수님이 아프리카를 통한 생방송을 진행하며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길 기다려 가지고 있던 책에 사인을 받았습니다. "부산에서 왔어요? 부산도 난리라던데." "닭장차 엎었답니다." - 이후 청계광장으로 이동. 백여명의 사람들이 산개하여 앉아 담소. 의견 교환. 아직도 귀가하지 않은 사람들은 도로가 통제된 그곳을 떠나 청계광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광장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진중권 교수님도 광장으로 와서 사람들의 인터뷰를 하고 있었는데, 커피숍에서 세수를 하고 나오니 어딘가로 가버리셨더라고요. - 부산 및 다른 지방 시위에 대해 이야기를 전해 들음. 폭소. 광장 한 켠 벤치에 앉아, 부산 시위나 광주, 그 밖 지방의 시위 이야기를 히요로부터 전화로 전해들었습니다. 특히 부산의 촛불시위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아서 많이 웃었어요. 그때가 4시 30분 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첫 차가 다닐 때까지 기다려 친구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5월 30일 금요일 서울에 사는 친구가 30일에 도배, 31일에 이사를 한다고 해서 도우러 갔다가 저녁 9시가 넘어서야 행사장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출발한 행렬을 따라잡고 가두시위를 했습니다. - 차량에 깔린 사람과 그 차량을 둘러싸고 일어난 폭력. 행렬이 시청 광장에 돌아와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따로 떨어져 어느 호텔 앞에 정차되어 있던 전경차량 뒷쪽을 지나던 중에, 비명과 왁자한 소리가 차량 앞쪽에서 터져나와 근처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왔습니다. 차량 앞 쪽에 있던 사람들은 지금 막 출발하려던 차량이 사람을 깔아버렸다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순간 온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사람들은 아직도 차량 밑에 사람이 깔려 있다며 전경차를 차고 두드리며 차를 뒤로 빼라고 외쳤습니다. 어떤 남자가 차량 뒷문을 밀어 차 열어 안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폭력상황이 일어날 듯해 그 뒤를 따라 차량에 뛰어 올랐습니다. 차량 안에는 늙수그레한 운전사 남자와, 갓 스물 넘었을 듯한 전경 한 명이 있었습니다. 먼저 차량 안에 뛰어오른 남자는 흥분상태로 욕설을 퍼부으며 차를 뒤로 빼라 소리질렀습니다. 전경에게 달려드는 그를 잡아 끌며 전경에게 어서 차를 뒤로 빼라 말하며 그러겠다는 답을 듣고 남자와 함께 차에서 내렸습니다. 또 다른 이가 따라 탑승하여 폭력사태나 혼란이 일어날까 싶어서였습니다. 차에서 내리자 전경이 안에서 뒷문을 닫았습니다. 다친 사람을 확인하려 했지만 정말 많은 인파가 몰려 그럴 수 없었습니다. 어느 순간 차가 움직이자 사람들은 "차가 도리어 앞으로 진행하여 사람을 또 다시 치었다"고 외쳐대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이들이 차량에 올라타려는 걸 막던 저는 차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보지 못했지만, 곧 앰블런스가 도착하여 차량의 앞쪽에서 누군가를 실어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제서야 '정말로 누군가 사고를 당하긴 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욕설과 함께 '경찰이 사람을 깔아 뭉갰다'거나 '안에 있는 놈들 끌어내라'고 외치며 버스를 두드리고 차기 시작했습니다. 별의별 소리가 다 터져나왔습니다. 경찰새끼가 차에 깔린 사람을 한 번 더 깔았다고 외치던 어느 20대 청년, 저 개새끼 당장 끌어 내려라고 외치던 어느 남자, 때려죽이자고 소리치던 늙은 남자, 나와서 사과하라고 째지는 목소리로 외치던 20대 여성. 그들이 무엇이 찍힐지도 모를 카메라와 휴대폰을 무작정 버스 창에 대고 찰칵거리고, 버스 앞 유리에 붙어 창을 두드려 대며 욕설을 외쳤습니다. 극히 흥분해 뒷문을 걷어차며 야이 개새끼들아 사람이 치었어 당장 튀어나와를 외치던 남자와, 안에 전경들은 뭐해요? 사고 진술 이렇게 하자고 말 맞추고 있겠지, 하는 따위의 대화가 그곳 가득 흘러넘쳤습니다. 두 시간쯤 그렇게 우르르 몰린 사람들을 뜯어 말리며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당장 나와 얼굴 까라고 차량을 차고 두드리는 사람들을 말리고, 대구경찰청 소속의 차량임을 두고 '대구경찰이 서울사람 쳤다'고 외치던 노인에게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시라 소리치고, 나와서 사과해라, 그러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카메라를 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라면 지금 때려죽이겠다고 이 난리인 사람들 앞으로 나올 수 있겠냐고 분통을 터뜨리고, 저 안에 있는 사람 얼굴 보고 찍어 퍼뜨려서 뭐할 거냐고 대거리를 했습니다. 나 카메라 없는데? 라고 비웃던 어느 아가씨의 목소리를, 그래도 난 시민 차로 깔아 뭉갠 경찰놈 얼굴을 꼭 봐야겠다고 소리지르던 어떤 남자의 얼굴을 나는 아직 기억합니다. 그 옆의 여자는 제게 아저씨는 누구냐고 묻습니다. 저도 그냥 시민이라고 말하니 정말 그냥 시민이냐고 재우칩니다. 기가 막혀 부산 주소 찍힌 주민증을 내밀며 시위 하러 부산서 온 사람이라고 외칩니다. 지갑을 꺼내는 결에 동전들이 떨어집니다. 그녀가 미안한 듯 동전을 주워 건네줍니다. 그 순간 제 목소리도 차분하게 돌아와 고맙습니다, 합니다. 그 결에 분위기가 좀 눅어듭니다. 몇 명 쯤의 다른 분들이 아까는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며 아저씨 말이 맞다고 다독입니다. 민변이 와 자신만이라도 차량에 들여보내달라 전경에게 확성기로 부탁합니다. 아이스박스로 막힌 뒷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경찰의 수습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 멀찍이 선 경찰들에게 달려가 제발 저 전경이랑 운전수 좀 빨리 수습해가라고 부탁합니다. 전경차량을 둘러싼 사람들은 흩어질 줄을 모릅니다. 그러다가 방송사 카메라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조명과 플래시가 가득해집니다. 이 정도면 아주 불미한 사태는 없겠지 하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와 광장턱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습니다. 그러고도 그 전경이 경찰들의 보호 아래 그 버스 안에서 나오는 데에는 한 시간이 좀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그 전경이 차량에서 나오기 전에, 예의 '전경차량에 깔렸다는 시민은 미미한 찰과상으로 앰블런스로 이동 중 스스로 구급차에서 귀가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아직도 차량 주변엔 살인 경찰은 나와서 사과하라고 외치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 옆을 어느 남자가 "오늘 재밌는데?" 라며 지나갔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시는 어떤 분은 어쩌면 그때 그 자리에서 제가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것을 느끼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직접 보지도 못한 사실을 감정적으로 치닫기 좋은 장작으로 바꾸어, 편리한대로 소리지르며 눈을 까뒤집고 누굴 때려죽이자는 말을 외치던 사람들과 그 얼굴을 확인하고 촬영하는 것이 역사적인 사명이라도 되는 양 악다구니를 쓰던 사람들에게 깊은 혐오와 염증을 느꼈습니다. 그건 끔찍하고, 참담한 광경이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지금 이 글을 읽는 어떤 분이 그때 제가 느꼈던 것과 같은 혐오감을 느끼신다면, 그때 제가 어느 다른 이로부터 들었던 말 또한 반드시 함께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혐오감은 오래도록 가시지 않아 저는 앉아 쉬는 동안 제가 보았던 것들을 주위 사람에게 전했습니다. 저는 그저께와 어제 참여하고 보았던 시위들에 비해 오늘 보고 겪은 것들이 너무도 실망스럽다 말했고, 그들이 마치 미친 개들 같았다는 표현으로 전하고 싶은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이야기를 모두 끝까지 들은 후에 그녀는 말했습니다. 쉽게 받아들여지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네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그들을 말렸을 것이다'라고 했고, '그랬던 사람들이 전체 시위대 중 얼마나 되냐'고 했고, '시위라는 특별한 상황 중에 일어나지 못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시위대에 지나친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어요. 저는 당혹했고, 화도 났습니다. 그녀는 이어 말했습니다. '한 달 가량이나 계속되어 오던 시위 간 경찰의 강경/폭력진압에도 불구하고 시민에 의한 폭력사태랄만한 것을 거진 찾아볼 수 없었던 것만으로도 지금 시민들의 시위문화는 놀랍다.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니 비판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비판 받아야 할 일이 맞고, 비판 받아야 하고, 네가 한 일도 잘 한 일이 맞다. 그러나 모든 이가 항상 침착하게 사리분별하여 매사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마치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나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듯 분개하지는 마라. '비판 받아야 할 일이 일어난 것에 분노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이해하는 것'과,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분노하며 그럴 수 있는 사람들에게 혐오와 경멸을 향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사람들이 잠시 정신 놓을 수 있음을 안다면 그들을 부정하고 혐오해서는 안된다. 그래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네가 화내는 것이 폭력남편에게 매일 얻어 맞는 여자가 남편의 머리를 잡아당겼다고 흥분하며 그녀를 비난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몇 시간이 지나 머리가 식은 후에야 그녀의 말을 납득할 수 있었어요. 저는 지금은 그때 있었던 일로 그때 보았던 사람들을 혐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촛불시위가 훌륭하게 진행되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것은 저라는 개인이 보고 겪었던 미시적인 사건과 별개로 시민에 의한 실제적인 폭력사태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평화시위가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정권과 경찰이 가하는 폭력에 대어 시위에 나선 시민들에게 이성과 자정이 존재한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불의에 분노하되 맹목에 경멸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 는 것은 그 후로도 며칠 간 주욱 생각할 거리가 되었습니다. - 이후 시위대 자진 해산. 시청역 지하도에서 가면. 04:00 경. 얼마쯤 시간이 지나 경찰대와 큰 충돌 없이 시위대가 자진 해산했습니다. 첫 차가 다닐 시간까지 한 시간이 좀 넘는 시간이 남아 시청역 지하도 기둥에 기대 앉았습니다. 돌 바닥이 따뜻해 놀랐습니다. 온돌일.. 리가 없는데 어째서 이렇게 따뜻할까. 모르긴 몰라도,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역내 히터가 쉼없이 가동되고 있던 때문이었을까요. 시위자들을 배려한 역장님의 조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티셔츠를 얼굴에 덮었습니다. 앉아 쉬기만 할 생각이었지만, 이내 누워 잠들었습니다. 5월 31일 토요일 - 5:30경 깨어 이사 도우러 감. 21:00 경 시청역 도착. 인천에 사는 신혼부부 친구네의 이사를 돕고 다시 시청역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함께 시위에 참여하기로 한 종훈, 동언, scarab을 만났습니다. 드디어 파티가 다 모였다고 농담하니 종훈이 전사 3명에 마법사 1명의 파티라 걱정스럽다 부연했습니다. rpg 이동으로 가두시위 참여를 시작했습니다. - 야간. 광화문 사거리/삼청동 시위. 12시가 지나 scarab과 둘만 시위대에 남았습니다. 삼청동에서 도로를 막은 전경차량 앞에서 정지한 시위대는 그곳에서 새벽이 되도록 전경들과 대치했습니다. 차량 두 대로 다 막지 못한 도로의 맨 오른편에서는 전경과 시민의 마찰이 끊임없이 일어났고, 살수차는 공중으로부터 샤워 시키듯 물을 뿌려댔습니다. 사람들은 커다란 비닐과 우의를 뒤집어 쓰고 시위를 이어갔고, 전경차량 위에 올라가 다치는 사람이 생기거나 전경차에 불이 붙는 등 여러가지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곳곳에 모닥불이 피워져 사람들이 젖은 옷을 말리고 체온을 보전했습니다. - 전경 1명 다리 심하게 다침. 시민 1명 살수에 안구출혈 심각. 히요씨로부터 뉴스가 문자로 보내져왔습니다. 연신 욕설을 외치며 시위대 사이를 뚫고 위험한 곳까지 달려 들어가려 하던 어느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사람들의 손에 의해 시위대의 뒤로 돌려졌습니다. 아이는 타일러도 다독여도 흥분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시민과 대치 중이던 전경 한 명이 사람들에 의해 시위대로 끌려 나왔습니다. 공기가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무언가 고함치는 사람. 비폭력을 외치는 사람, 따라 비폭력을 외치는 사람. 전경에게 달려드는 사람. 그걸 떼어 놓는 사람. 전경 때리지 말라고 외치는 사람. 전경은 수많은 손들에 의해 시위대의 뒤로 넘겨져 결국 누구도 그에게 손대지 않는 곳까지 이동되었습니다. 그곳 역시 시위대가 가득했지만 누구도 전경에게 달려들거나 대거리를 하려하지는 않았습니다. 거기까지 쫓아가 전경에게 괜찮으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괜찮다 말하며 저 편으로 걸어 사라졌습니다. 끌려 나온 전경을 왜 그냥 돌려보내냐며, 저거 또 돌아가서 우리하고 싸울 거 아니냐며, 얼른 잡아서 잡힌 시민하고 교환하자고 어느 아주머니가 격하게 외쳤습니다. 그녀는 태극기와 플랫카드를 몸에 걸고 있었습니다. 어제 시민 친 경찰을 때려죽이자고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이나, 거기서 전경과 시민을 교환하자는 아주머니나, 그렇게 사람들에게 선정적인 폭력을 소리쳐 종용하는 이들은 항상 저랬습니다. 결코 자신이 움직이려 하지는 않고, 사람들을 자극해 감정이 격화될 상황이 벌어지길 선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대답하는 시민은 없었습니다. - 새벽, 날 밝자 살수차 본격 투입. 광화문과 삼청동 양 편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시위대는 새벽까지도 대단히 많은 인원들이 남아있었습니다. 날이 완전히 밝자 전경대는 도로를 확보하기 위해 본격적인 시위진압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은 전경대였습니다. 전경대는 살수차의 살수와 더불어 방패로 시위대를 위협하고 구타하며 시위대를 밀어냈습니다. 시민들은 속절없이 얻어맞고, 도망하며, 물러났습니다. 그때 방패로 어깨를 찍혔습니다. 제 어깨를 방패 끝날로 찍어 내린 전경은 찍기 전에도, 찍으면서도, 찍은 후에도 끊임없이 욕설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저는 군에서 5년 가까운 시간을 부사관으로 지냈습니다. 저는 그 얼굴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전경 개인의 얼굴과 신상을 안다는 게 아니라, 전경복이 입혀져 거기서 방패로 사람들을 때리길 교육받고 욕설을 내뱉는 그 스무 초입 청년의 얼굴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소대장이었을 때 그 청년은 소대원이었습니다. 저는 그 얼굴을 알고 있었습니다. 시위대는 밀려 선두부터 스크럼을 짰습니다. 맨 앞에 서 다른 이들과 스크럼을 짜며 전경들과 시선을 교환했습니다. 시선을 피하는 전경도 있었고, 시위대 개인에 주의를 돌리려 하지 않는 전경도 있었고, 웃는 전경도 있었습니다. 거리에서 어쩌다 어깨를 부딪히면 서로 사과와 용서를 나누었을 청년들과 시민들이 거기서 그렇게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마주 적대하는 데 필요했기에 증오가 거기 끌려나와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은 그렇게 참담했습니다. 간혹 전경대에게 달려들어 폭력을 휘두르려던 사람이, 그 와중에도 시위대에 의해 말려져 시위대 뒤로 돌려졌습니다. 누군가 생수병을 던지면 여기저기에서 그에게 물병 던지지 말라는 외침이 떨어졌습니다. 그랬습니다. scarab과 뒤로 물러나와 있던 중 살수차가 사람들에게 물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신문 조각이 날려지듯, 넘어지고 밀리고 굴러 흩어졌습니다. 그건 소름이 돋는 광경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부딪혀 흩어지는 물은 시야를 가득 가리고, 바닥에 떨어진 물은 시냇물처럼 흘렀습니다. 그 혼란한 가운데 어느 머리 하얀 할머니를 싸안으며 살수차에 등을 돌린 순간 물줄기가 등과 하반신을 때렸습니다. 할머니를 안고 있었기 때문인지 겨우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 물줄기의 힘에 공포를 느꼈습니다. 온 몸은 순식간에 완전히 젖어 있었습니다. 어느 커다란 남자가 물줄기에 치여 담벽까지 밀려가 있었습니다. 그는 혼절해 있었고, 사람들이 의료대를 부르며 울고 소리쳤습니다. 눈을 돌려 scarab을 찾자 그는 항의하듯 혼자 물줄기 앞에 서 있었습니다. scarab의 팔을 끌어 부상자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전경대는 부상자를 둘러싼 사람들을 지나쳐 계속 살수차를 이용한 진압을 진행했습니다. 전경대와 살수차가 지나간 도로는 물청소라도 한 듯 깨끗했고, 도로가엔 누군가의 안경과, 신발과, 옷가지가 흩어져 있었습니다. 쓰러져 혼절한 남자는 구급대에 의해 회수되었습니다. 사람들과 그를 들것에 올려놓을 때 보았던 그의 속옷은 brave man이라 적힌 군용이었습니다. 역시 푹 젖은 scarab과 함께 삼청동 쪽으로 걷자니 전경들이 삼청동 앞 시위대까지 저 편으로 몰아내고 도로와 인도 사이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 전경들에게 소리치고 호소하는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젖은 몸은 추웠고, 이 추위를 잊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얻었던 쵸코파이 두 개를 scarab과 먹었습니다. ozzyz님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짧은 인사를 나눴습니다. 친구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전철 내 에어콘 탓에 더욱 추웠습니다. 저는 그 추위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6월 1일 일요일 - 19:00경 시청역 도착. 늘어난 인파에 놀람. 어제 옷이 젖어 친구에게 옷을 빌렸습니다. 붉은 티셔츠와 군복 바지를 빌려주는 그에게 이거 너무 상징적인 거 아니냐고 웃었습니다. 시청역으로 이동 하다 역내에서 제게 길을 물으시는 부부에게 길 안내를 했습니다. 이젠 서울시민 길 안내도 하는 구나 하고 픽 웃으며 시청역 지하도에서 밖으로 나와 보니,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많은 인파가 제가끔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 즈음에 역 앞 도로가 인파로 막히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어제의 폭력진압과 사고 등이 보도되고 알려진 때문일까 하고 짐작해봤지만, 이유가 어떻건 그건 장관이었습니다. 주위가 어둑어둑해지는 가운데, 정말로 많은 촛불을 든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습니다. 노점 트럭에서 음료를 파는 아저씨가 촛불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음료를 나누어주고 있었습니다. - 20:48. 전경들의 도로통제. 오늘은 차량을 이용한 통제선이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 쪽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scarab과 함께 시위대 앞 쪽으로 이동하던 중 어떤 승용차가 시위대 사이로 들어오려는 것을 보았습니다. 차의 진행방향으로부터 사람들이 비켜나는데, 누구의 짐인지 큰 종이백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차는 종이백을 깔아버리고 맙니다. 사람들이 차로 가 '여긴 시위 때문에 더 진입이 안된다'고 돌아가라 말합니다. 차 안의 남자와 작은 실랑이가 일어나지만 차는 곧 돌아 나가 사라집니다. 사람들은 차에 깔렸던 종이백이 누구 것인지 궁금해 하며 종이백 안을 들여다봅니다. 그 안엔 옷가지가 가득 들어 있고, 쪽지가 있습니다. 쪽지엔 살수차로 몸이 젖은 분들 누구라도 이 옷으로 갈아입으시라, 고 적혀 있습니다. 어떤 아저씨가 아 나 눈물 날라 그런다 그럽니다. - 시위대와 전경대 격돌. 부상자. 사람은 훨씬 많아졌지만 24시 이후까지 이 사람들이 얼마나 남을 것인지는 짐작이 가지 않았습니다. 24시 이전의 가두 시위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행진이지만, 24시 이후로는 오늘도 대치와 마찰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남는 인원이 어쩔 수 없이 도로를 점거할 필요가 없을 정도라면 시청 광장에 모여 촛불을 켜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모두의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연행되는 사람들이었고, 전경과 대치하고 방패로 맞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24시 이후 더 많은 사람이 남아 있길 바랬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도 시위대는 목청껏 고시철회 협상무효 구호를 외치고, 버스 위에서 시위대를 내려다보는 전경들에게 노래를 하라거나 개인기를 하라 외쳤습니다. 전경들의 취침점호를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그건 전경대를 향한 조롱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유머와 위트가 그곳의 분위기를 자못 심각해지지 않게 했고, 서로가 적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취침점호 보장하라는 구호가 외쳐질 때 전경 몇도 입에 비웃음이 아닌 웃음을 물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람들에 의해 도로를 막고 있던 전경 차량 두 대가 밧줄로 끌어당겨졌습니다. 저도 그 밧줄을 당겼습니다. 반드시 청와대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차량으로 도로가 통제되어 시민들의 시위와 발길이 막혀 있는 것에 저항감을 느낀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도로를 열어 앞으로 나아가려 했고, 차량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는 전경대와 방패들에 의해 다시 막혔습니다. 사람들은 세로로 주차되어 있던 차량 두 대 만큼의 넓은 폭으로 전경대와 대치했습니다. 차량을 끌어 당겨 치웠지만 사람들은 전경들에게 달려들거나 밀어붙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아저씨가 저기 앞 까지만 가자고 경찰 지휘자에게 외쳤습니다. 쵸코바와 생수가 여기저기서 날라져 시위대에게 나누어졌습니다. 그렇게 대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두의 분위기가 술렁였습니다. '밀어붙이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왔고, '안된다'는 목소리도 들려왔습니다. 전경대와 시위대 사이를 예비군복을 입은 시위자들이 가로 막고 흥분해 전경대에 달려드는 시위대를 막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필요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점점 '밀어붙이자'는, '뚫고 나가자'는 목소리가 커져갔습니다. 도화선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불안한 몇 순간 후에, 어디의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격돌이 시작되었습니다. 그저 밀고 밀리는 것뿐이었지만, 그 격돌은 제가 서울에서 겪었던 어느 상황보다도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비명과 외침으로 가득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밀고 밀리며 서로의 다리를 차고 밟았고, 저도 거의 반쯤 넘어진 상태로 아래 넘어져 쓰러진 누군가의 어딘가를 밟았습니다. 여기서 넘어진다면 밟혀 죽는다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래 사람이 쓰러졌다는 외침이 터져나왔지만 엄청난 소음의 가운데에서 묻혀버렸습니다. 돌이켜 보면 몇 분도 되지 않았을 그 격돌이 끝나고 여기 사람이 쓰러졌다는 외침에 사람들이 비켜섰습니다. 정장을 입은 사람 한 명이 거기 쓰러져 있었습니다. 정말로 많은 사람이 그를 밟았을 것입니다. 시위대는 전진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의료진이 들어올 길을 틔우고 의료진을 소리쳐 불렀습니다. 남자는 의료진에 의해 실려 사라졌습니다. 상황이 일단락 된 후에야 scarab이 그 지옥같은 상황 중에 제 등을 받쳐 넘어지지 않게 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일 이후로 '청와대로 전진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를 보태지 않습니다. 인원의 차이가 얼마건 충돌이 발생할 때엔 반드시 피해자가 생김을 실감한 때문입니다. 경찰이 폭력을 휘두르며 강경진압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에 대한 시민의 분노 역시 온당하다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때문에 그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발생할 피해자를 감수하고서라도 청와대까지 전진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실 우리는 목숨만큼 귀중한 것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시민의 권리입니다. 하지만 그 권리의 수호를 위해 가장 효율적이며 적절한 수단이 피해를 감수한 청와대 진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내 스러지지 않는 의지와 비판의식, 그리고 비폭력이 바로 지금, 오늘 시위대의 무기입니다. 그날 24시 이후에 만 명 남짓 남았던, 구심점조차 갖지 않길 선택한 사람들이 정권과 전쟁을 벌일 수는 없습니다. - 심상정 의원님 만남. scarab과 함께 선두에서 물러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시위장에 나온 심상정 의원님을 발견했습니다. 가까이 가니 그 주위를 둘러싸고 여러 사람이 심의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대화를 듣다 기회를 얻어 질문을 했습니다. 살수차를 사람에게 직접 쏘는 것은 불법인 것으로 압니다. 그 살수는 정말 위협적이었고, 아시는 대로 부상자도 많았습니다. 어제 그 자리를 물러나오면서 친구와 농담처럼 그런 이야길 했었습니다. '지금 시위에 동조하시는 국회의원분들 좀 나와서 살수차 앞에 딱 서주시면 설마 경찰들이 거기다 대고 쏠까.' 정말로 살수차 앞에 나와 살수를 막아달라는 말씀을 드리는 건 아니지만, 만일 이제 곧 살수가 시작된다면 의원님이 실제적으로 시위대를 보호하거나 도와주실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몇 순간 후에, 심의원님은 심의원님 본인이라도 경찰들은 가리지 않고 살수할 것이다, 여러분과 함께 하는 것 외에 드릴 수 있는 도움이 없습니다, 라고 답하셨습니다.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나왔습니다. - 경찰과 대치하던 시민들. 경고에 이은 경찰 진격에 시위대 와해. 대다수 시민 인도로 대피. 전경들 도로 통제. 4시 가까운 즈음이었을 것 같습니다.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진격하여 시위대가 무너졌습니다. 전경들은 달리는 중에 방패를 땅에 두드려댔고, 그 위협적인 소음이 온통 가득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흩어져 인도로 도망쳤고, 어떤 이들은 달려가는 전경대 중 전경을 채어 잡았습니다. 거기에서도 비폭력이란 외침과 그 전경 놓아주라는 외침이 터져나왔습니다. 큰 유혈사태 없이 사람들은 인도로 밀려났고, 시청광장으로 이동했습니다. - 구호품. 바나나와 커피. 시청 광장에는 구호품을 나누어주는 사람들과, 다시 촛불을 켜고 모여 앉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아직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히요에게 시위대에게 구호품을 사다주라고 부탁받은 돈을 값있게 쓸 수 있었습니다. scarab과 저도 바나나 한 개씩과 커피를 마시며 오늘은 살수가 없어 다행이라는 등의 이야길 나눴습니다. 도로와 인도는 전경들에 의해 가로막혔습니다. - 도로를 통제당한 시민들, 신호등을 이용한 시위. 그때까지 남아있던 시민들 중 일부가 신호등을 이용해 시위하기 시작한 것을 보고 scarab과 폭소했습니다. 과연 저거라면 합법이지. 사람들은 횡단보도 양편에 서서 초록불로 바뀔 때마다 교차해 지나가며 구호를 외쳤습니다. scarab과 함께 거기 참여하다가, 다시 또 광장으로 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첫 차를 타고 친구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첫 차 안에서 '이명박을 점지하신 삼신할매 각성하라'는 현수막이 떠올라 웃었습니다. 그날 몇 되지 않는 웃을 거리였습니다. 친구의 집에 돌아와 뉴스로 확인한 그날의 연행자는 90여명이었습니다. 6월 2일 월요일 - 동생과 저녁식사. 친구집에서 조금 일찍 나와 서울에 혼자 사는 동생과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많은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시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동생과 언쟁이 있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지 알기에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 시청 도착. 동생과 식사를 끝내고 도착한 시위장은 아주 많진 않지만 생각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습니다. 이날 시위는 가두시위를 거쳐 11시 경 거의 자진해산되었습니다. 격렬한 폭발보다도 멈추지 않는 행동과 의지가 더욱 중요하다고 다시금 생각했습니다. 6월 3일 화요일 14:40분 차를 타고 부산에 돌아왔습니다. 가장 참여가 필요한 곳이 서울 시위라 생각되었기에 일주일 간의 짧은 참여가 안타까웠습니다. 흘려 쓴 탓에 읽기 난감한 메모를 바탕으로, 일주일 간의 기억을 더듬어 옮기는데 이틀이 걸렸습니다. 읽기에도 불편한 기록일 것 같고 읽는 분이 정황을 손에 잡힐 듯 알 수 있을 기록도 아니지만.. 누구의 '배후'나 선동도 없이, 유모차를 끌거나 보행 보조기를 짚고 나온 분들과, 목발과 휠체어를 타고 나온 분들과, 그리고 성별과 노소를 가리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던 사람들이 들고 있던 촛불과, 그들이 내던 목소리와, 저 또한 거기 보태 지르던 소리와, 그 사람들이 원하고 바랐던 정당함에 대해서 나름의 기록을 여기 남겨둡니다. 어둠을 탓하기보다 촛불 하나를 켠 사람들이 거기 많았습니다. 가능한 더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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