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1월 13일
病身

평소 호감을 가지고 구독하고 있던 블로그의 어떤 글에서 병신 두 글자를 발견하고 마음이 찹찹해진다.

병신이라 씹어뱉는 그 쾌감을 나도 안다. 있는대로 내 부아를 돋우는 대상의 얼굴에 가래 올려 침뱉는 듯한 시원함. 대신할 욕설을 찾아봐도 이만큼 경멸과 혐오의 감정을 그득 실어 나를 수 있는 어구도 찾기 어렵다. 더구나 입에 담기에 아주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쯤은 보편적인 욕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병신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커다란 경멸과 혐오를 빌려 누군가를 매도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향해 던졌던 부당한 경멸과 혐오에 편승하는 것임을 생각지는 못하는 걸까. 또 어딘가에서 사회의 차별과 부조리를 욕하는 어떤 이가 말 끝마다 병신을 갖다붙이는 모습에 넌더리가 난다. 차별을 상징하는 말을 사용하여 차별을 성토하는 그 모습이라니.

병신이란 말이 누구를 어떻게 비하하고 매도하는 말인지 모르는 이는 없을 것 같다. 사전 보자면 '신체의 어느 부분이 온전하지 못한 기형이거나 그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 또는 그런 사람.'이라고도 하고, '모자라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주로 남을 욕할 때에 쓴다.'라고도 하는데 지금 보니 사전도 엿같네. 아니 그럼 '신체의 어느 부분이 온전하지 못한 기형이거나 그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 또는 그런 사람.'은 병신이라고 불러도 된다는 거여 뭐여. '신체의 어느 부분이 온전하지 못한 기형이거나 그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 또는 그런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라고 해야 할 거 아녀. 썅.

사회의 목적이 최대 구성원의 행복인 이상 장애를 가진 것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흠결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주 멀지 않은 예전에는 아침에 길에서 맹인을 보고 재수 없다고 침 뱉던 사람이 있었고, 장애인으로 마수걸이를 하기 싫어하던 상점주인이 있었다. 나는 당신도 그런 세월을 먼 고리짝 옛날로 보내고 싶어하리라 믿고 싶다. 병신같은 새끼란 말은 장애인같은 새끼란 말이고, 당신이 욕하고 싶어하는 상대에 더해서 보편적인 모양의 심신을 지니지 못한 사람까지 차별하여 매도하는 말이다. 병신이란 말 좀 안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인제는 좀 그랬으면 좋겠다. 당신이 누군가를 장애인같은 새끼라고 욕하는 풍경을 발견하는 어떤 장애인은 참 깝깝하고 슬프지 않겠냐. 씨발 안 그렇냐, 좀.




by laystall | 2008/01/13 23:58 | 02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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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太虛 at 2008/01/14 16:31
욕이라는 것이 특정 소수자를 비하하는 말에서 온 것들이 많지요. 병신, 바보, 미친놈, 등등. 영어로 가면 fagot도 있겠군요. 좀 더 신중히 사용해주었으면 합니다. 저부터도 입조심해야겠어요.
Commented by laystall at 2008/01/14 17:27
太虛 /
그렇게 말씀하시면 바보도 미친놈도 소수자 비하욕설이니까 쓰지 말자는 얘기같이 되어 버리는데, 그건 제가 하려던 말과 좀 달라요. 바보나 미친놈 등의 말도 따지고 들면 소수자를 비하하는 말로부터 온 것이겠지만, 사실 바보나 미친놈이 어딘가의 소수자를 상처입힐 정도로 비일상적이고 날카로운 말은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병신이란 말은 바보나 미친놈같은 말보다 훨씬 폭력성이 심하다고 봐요. 여태껏 이 사회에서 장애인들에게 가해졌던 부정적인 편견이 집약된 표현이나 마찬가지인데다, 병신 소리에 상처입을 사람도 어마무지 많으니까요.

그니까 제 말은 소수자 비하로부터 온 욕들을 쓰지 말자.. 라기보다, '병신이란 말 좀 폐기하자'라는 거죠. 딱 집어서 '병신'만요.
Commented by 미스트 at 2009/12/25 14:16
....음, 글쎄요. 저는 '바보'나 '미친놈'과 '병신'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장애인들이 '바보'나 '미친 놈'들보다 많으니까, 혹은 '미친놈'이나 '바보'는 그들을 향한 악의에 '장애인'보다 더 무심할 수 있으니까 괜찮다는 것인가요?

기왕에 지향한다면 '소수자 비하의 늬앙스가 담긴 욕을 쓰지말자' 쪽이 더 낫지 않을까 합니다.
Commented by laystall at 2009/12/25 15:31
영구적인 장애를 가진 누군가에게, 혹은 그의 앞에서 '바보'라 그에게 말하거나 그의 앞에서 '바보'라 당신의 친구에게 말하는 거, 별로 이상하게 느껴질 것 없는 풍경이겠는데, 여기서 '바보' 대신 '병신'이 들어가도 ok 일지 생각해보세요. 그래도 ok라면, 이번에는 미스트님이 영구적인 장애를 입은 사람이라 가정하고 그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시고.
Commented by 太虛 at 2008/01/14 19:59
그렇군요. 확실히 '병신'에는 더한 무게가 담겨있지요. 어원을 일일이 따져서 '전부 쓰지 말자!'는 말은 확실히 설득력도 떨어지고요. 하지만 전 저런 말들 역시 은연중에 내포된 비하의식을 드러내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쓰는건 역시 꺼려져요.
Commented at 2008/01/15 02:4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太虛 at 2008/01/15 13:02
아, 그리고 제 넘겨짚는 버릇은 고쳐야될 필요성이 있어요.(그러니 한대! 따악!)
Commented by laystall at 2008/01/17 18:09
太虛 /
머리 맞으면 뇌세포 죽는대염..

비공개 /
네. 정말 자주, 쉽게요.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조금씩, 천천히나마 지금까지처럼 나아져가리라 믿어요. :)
Commented by at 2009/12/25 15:38
영구적인 장애를 가진 누군가에게, 혹은 그의 앞에서 '바보'라 그에게 말하거나 그의 앞에서 '바보'라 당신의 친구에게 말하는 거, 별로 이상하게 느껴질 것 없는 풍경이겠는데, ?????

이게 왜 이상하지 않죠??
Commented by laystall at 2009/12/25 15:39
...장애인은 '바보' 소리도 안 하고 사는 줄 아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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