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09일
061109 ◆×2
최근 나는 항상 이 막차를 탄다.
차내의 스피커로 이 열차가 오늘의 마지막 차량이다, 라는 안내가 방송된다. 승객들이 드문드문 자리에 앉아있는 막차 안엔 느슨하고 조용한 공기가 흐른다. 긴 좌석의 어느 한 곳에 앉아 눈을 핸드폰으로 돌리고 좀처럼 끝나지 않는 퍼즐게임에 몰두한다. 집 근처의 역까지는 한참이다. 그 한참 동안 등을 웅크린 자세로 핸드폰 화면을 주시하다 그 너머로 사람들의 지나가는 다리에 시선을 보내며, 자칫하면 졸 것만 같은 안온함에 감싸여 평온히 귀가하는 것이 요즘의 일과다. 그런데 이 다리는 아까도 본 다리인데.

그럭저럭 청결하지만 양 무릎이 찢어진 청바지가 입혀진 남자의 다리. 특이하다면 그 걸음이 이어폰을 낀 내 귀에도 들릴 정도로 질질 끌리고 있다는 점과, 자리가 충분히 남아도는 열차 안임에도 불구하고 아까부터 내 눈 앞을 왕복하고 있다는 점. 조금 고개를 들어 걸음의 뒤를 쫓는다.

남자의 다리는 앳된 티를 벗기 시작하는 청년의 것이었다. 흰 와이셔츠에 검은 조끼를 입고, 덥수룩한 머리에 안경을 낀 희여멀건한 얼굴이다. 눈이 풀려있다. 취했나. 옆으로 메는 서류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갈짓자로 비틀비틀 천천히 차칸내의 이쪽 끝으로 갔다가 끝에서 돌아 다시 저쪽 끝으로, 비척이는 걸음을 걷고있다.

술에 취한 것 같지 않아 더 뜨악하다. 그 걸음이 다시 내 앞을 지나간다. 비틀, 비틀. 저 끝에서 돌아 다시 내 앞을 지나간다. 휘청, 휘청. 눈 들어 물끄러미 바라보지는 않지만 다른 승객들도 의아하고 불편한 기분을 느끼는 듯하다. 청년이 세번째인가 네번째인가 내 앞을 지날 적에 스윽 그 팔을 잡으며 말을 건다. 일단은 미소를 지으며.

왜 이렇게 서서 걸어다녀요, 보는 사람 불안하게. 청년은 멈칫하고는 마주 미소하며 말한다. 다음 다음에 내려야 되는데, 너무 졸려서, 앉으면 잘 것 같아서요.

그 얼굴을 덮고 있던 것은 허무가 아니라 피로였구나.

다음 다음 승강장에 청년이 내린다.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그 뒷모습을 시선으로 쫓는다. 잘 가라, 청년. 지지 마라, 청년.










아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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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ystall | 2006/11/09 10:21 | 02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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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룬그리져 at 2006/11/09 11:45
...저 무기, 정말 좋은데요.(이런저런 의미로)

그나저나, 그 청년, 푹쉬고 또다시 밝은 내일을.(포지티브 포지티브)
Commented by ㅇㅅㅇ at 2006/11/09 13:44
우핫우핫.....

그나저나 그 청년 열심히 사네요.
좋은 일 있겠죠
Commented by scarab at 2006/11/09 22:11
열심히 살아야지요 ^_^/
Commented by 누들 at 2006/11/10 00:59
미국의 손에 데스노트가 들어간다면.. 크헉..-0-;
Commented at 2006/11/12 14:2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utena at 2006/11/17 18:50
이겨라 청년! 돈 많이 벌어라 청년! (고용주는 누구냐!)
Commented at 2006/11/30 03:0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laystall at 2006/12/02 23:43
룬그리져 /
대가는 부담되지만 말임다. 천국도 지옥도 아니라면 연옥.. 이라고 간단히 생각할만한 게 아닌 듯해서 무섭슴다.

ㅇㅅㅇ /
그럼, 그럼. 있을 게 분명하지.

scarab /
동감무쌍임다. 저도 열심히 그리겠슴다.

누들 /
미국의 누구에게인가가 관건이겠슴다만.. 로버트 윌리엄스같은 분에게라면야.

비공개 /
좋은 책 팔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utena /
저도 벌어야 함다, 저도!

비공개 /
예잇. 감사합니다. 덕분에 행복합니다. 열심 그리겠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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